94년 일본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축구 준결승전은 한국축구사에서 최대 이변으로 꼽힐 만하다. 한국이 슈팅수 28-1의 일방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후반 우즈베키스탄 선수의 중거리슛 한방에 어이없게 패했던 것이다.하지만 언론이나 팬, 누구도 한국팀에 대해 비난하지 않았다. 한국 선수들은 그야말로 최선을 다한 공격축구를 했기 때문이다.
축구는 이처럼 이변의 경기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프로축구에는 이변(?)이 너무 많다. 안양 LG, 포항, 울산 등 속칭 '자물쇠 수비'를 특징으로 하는 팀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팀들은 수비를 6~8명씩 두고 기습으로 승부를 낸다. 일방적으로 몰리다 불과 3~4개 슛을 날리고 이기는 경우도 있다.
보통 정상적인 경기에서는 슈팅수가 27개 내외이다. 3~4분 간격으로 일진일퇴가 거듭되면 관중석은 90분내내 함성으로 뒤덮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요즘 프로 축구장엔 관중석의 함성이 사라졌다. 슈팅수-슈팅다운 슈팅도 없지만- 15개 미만의 경기가 수두룩하고 수비위주다 보니 경기내용도 재미없다.
지난 해 안양(언론들은 안양우승을 '기술축구의 개가'라고 칭찬했지만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이 수비축구로 우승한 이후 올들어 수비축구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그동안 한국축구 수준에 대해 언급을 피하던 히딩크 감독이 11일 안양_포항전을 보고 "템포가 너무 느리다"고 혹평한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됐다가 약물복용으로 물러난 크리스토프 다움 전 레버쿠젠 감독은 독일에서 최고 인기를 누렸다.
인기비결은 분데스리가 17위였던 팀을 단숨에 2위로 끌어 올린 사실보다는 그가 표방한 공격축구가 팬들에게 어필했기 때문이다. 그는 독일에서 처음으로 3명의 포워드 시스템을 구사하는 등 철저히 '공격축구'를 지향했고 그것으로 성적을 냈다.
축구는 말하자면 상대방의 영역을 점유해 가는 경기이며 그것이 묘미이다. 화려한 개인기와 공격은 축구의 미(美)를 만끽하게 하는 요소다.
그러나 성적 지상주의가 낳은 재미없는 우리 프로축구는 관중을 축구장 밖으로 내몰고 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흥분과 감동이 없다면 그것은 더 이상 축구가 아니다.
/유승근기자 u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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