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펼쳐보는 대부분의 독자는 이미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어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독자는 조간신문에서 새로운 정보를 얻으려 하기보다는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를 신문이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같은 사건이지만 통찰력 있고 명쾌한 비판정신이 실린 기사가 자기의 생각과 같다고 느껴질 때 독자는 그 신문을 사랑한다.
지난 삼 주(3월 26일~4월 12일) 사이의 한국일보 기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1면 톱기사의 편집이다.
3월 28일자는 '현대건설 1조대 출자전환 추진', 3월 29일자는 '현대건설 2조 2,900억원 출자전환 확정'이었고, 3월 30일자는 '이석채씨 전격 귀국', 3월 31일자는 '이석채씨 밤샘조사'가 톱 제목이었다.
같은 사건을 이틀씩 짝을 지워 톱기사로 올리는 것은 너무 헤픈 편집이었다. 소재의 경중으로 보아 톱기사 감으로 한 번이면 족한 것이다.
최근 언론개혁의 문제로 언ㆍ정 갈등, 언ㆍ언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다른 신문에서 연일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비해 한국일보는 애써 외면하려는 인상이 역력하다. 한국일보도 언론개혁의 문제가 발등의 불인 만큼 어떤 입장이든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난 삼 주 동안 기획취재 세 건이 1면 주요기사로 올라왔다. 기획기사는 독자들에게 읽을 거리를 제공하며 그 신문의 집중력과 분석력을 확인하는 장이다.
4월 2일자 복지정책, 4월 6일자 문화재 복원, 4월 9일자 지방 지하철에 대한 진단은 각각 단발성 기획이 되어 기사의 비중이 반감되었다.
한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여러 회 연재 기획을 통한 집중력이 있는 취재로 독자들에게 어떤 국민적 이슈를 찾아 주는 편집이 되었으면 한다
한국일보에서 매주 월요일에 한 번씩 볼 수 있는 것이 '한국시단'이다. 1면 한 구석에 마치 돌출광고처럼 눈길이 가는 곳이다.
월요일에 한 번이 아니라 매주 두 번 정도로 횟수를 늘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의 이해에 대한 간략한 해설을 관련기사로 곁들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시와 같은 문화 정보는 저급한 문화에 찌든 국민들에게 정신적 청량제 역할을 한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시에 눈길을 주는 세상을 만드는데 한국일보가 우뚝 섰으면 한다.
4월 2일자 스포츠 면에서 2001년 프로 야구 개막을 알리는 그래픽 디자인은 눈길을 끈다.
2001년 글씨를 야구공과 방망이로 디자인한 것인데 스포츠 면에 걸맞은 시각 디자인이다.
이러한 시각적 편집의 활성화는 미래사회 신문이 살아 남는 중요한 모티브가 될 것이다. 4월 6일자 사회면에 '국가 지급 생계비 求償'이라는 제목이 있다.
'求償'이라는 한자어가 그리 어운 한자는 아니지만 이 경제용어의 개념을 아는 독자는 많지 않다. 독자의 계층은 다양하다. '求償'이라는 한자어에 대한 간략한 해설을 덧붙이는 것도 독자에 대한 배려이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국일보는 '21세기 문화어 사전'을 싣고 있다. 6일자에는 '구리다'를 분석했다. 이러한 기사는 현대 국어 낱말의 의미변화 양상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문화어'란 북한에서 쓰는 용어로 남한의 표준어와 동일한 개념으로 쓰이고 있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신문에서 밝히고 있는 '구리다'의 새 정의는 일종의 표준적 정의로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새 세대 젊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임의적으로 주고받는 변용된 낱말의미를 무조건 표준적 정의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어쩌면 낱말의 오ㆍ남용 실태로도 취급할 수 있다. 이 새 정의가 정의로서 가치를 지니려면 여러 용례를 중심으로 치밀한 분석과 검증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최상진ㆍ경희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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