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로버츠와 브래드 피트가 영화에서 만났다. 처음이다. 그 사실만으로 '멕시칸' (감독 고어 버빈스키)은 화제가 되기에 충분하다.지난달 26일 줄리아 로버츠가 아카데미에서 '에린 브로코비치'로 '마침내' 여우주연상을 받고 입이 찢어져라 기뻐할 때 미국 팬들은 때마침 개봉중인 '멕시칸' 에서의 그를 떠올리며 더욱 즐거워했다. 그만큼 '멕시칸' 에서 줄리아 로버츠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멋있는 남자 브래드 피트와 신데렐라의 주인공 줄리아 로버츠가 만났으니 '한 편의 멋진 러브스토리, 아니면 지적 사치가 더덕더덕한 스릴러물이겠지' 라고 지레짐작하면 큰 오산이다. '멕시칸' 은 'B급 갱스터무비' 이다.
'록스탁 앤 투 스모킹 베럴' 이나 브래드 피트의 바로 전 작품인 '스내치' 처럼 엉뚱한 캐릭터들이 벌이는 게임과 그 게임을 절묘하게 엮어가는 기발하고 매끄러우며 때론 예상을 뒤집는 반전. '멕시칸' 은 여기에 로맨틱 코미디란 또 하나의 재료를 배합시켜 그 맛을 배가시켰다.
눈빛부터 예전과 다르다. 아침에 일어나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말단 갱단원인 제리(브래드 피트), 그런 제리와 함께 있는 것이 마냥 행복해 소녀처럼 웃음을 머금은 샘(줄리아 로버츠). 제리는 눈빛 만큼이나 멍청하다.
사거리에서 보스의 차를 들이받아 트렁크에 실린 인질이 발각돼 보스를 감옥에 보냈고, 시키는 일마다 실패의 연속이다. 이제 그런 일 그만두고 라스베이거스로 가자는 샘. 그러나 제리가 멕시코로 가서 '멕시칸' 이란 골동품 총을 갖고 오는 일을 맡으면서 둘은 서로 헤어져 각자 목적지로 향한다.
라스베어거스로 가는 샘과 멕시코로 간 제리는 약속이나 한 듯 겨끔내기로 다른 맛의 웃음을 만들어낸다. 허풍스럽고 소심한 제리가 총을 잃고 멕시코를 헤매며 연출하는 웃음이 시골풍, '포레스트 검프' 식이라면, 그런 제리 때문에 인질이 돼 어이없게도 동성연애자인 인질범의 인생 상담을 해주는 샘이 주는 웃음은 도시적이며 시트콤적이다.
하나같이 엉뚱한 주변인물, 상식의 뒤집는 대사와 반응, 인종과 언어의 차이가 빚어내는 해프닝, 끝까지 결말을 예측하지 못하는 반전. 하다못해 골동품 총에 얽힌 사연까지 일본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 을 차용해 웃음으로 연결한다. 중간중간 쉼표처럼 집어넣은 액션까지 '농담'이다.
처음부터 웃기기로 작정한, 치밀하게 계산된 영화이다. 이런 B급 웃음을 다름 아닌 줄리아 로버츠와 브래드 피트가 예상을 뛰어넘어 능청스럽게 해냈다는 사실 때문에 '멕시칸'은 작은 영화로 출발해 큰 영화가 됐다. 또한 그 때문에 독특하고 기발한 B급영화가 되지 못하는 아쉬움도 남겼다. 28일 개봉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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