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신문고시 도입을 둘러싸고 언론계 안팎에서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일부에서는 신문업계에 과도한 경품제공과 신문 강제 투입 등 불공정 관행이 만연하고 있어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인 반면 신문고시가 신문의 영업활동을 제한하고 언론의 자율경쟁을 위협할 것이라는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찬성] 신문시장 자본력이 좌우 불법시정 탄압 호도말아야
신문고시 제정을 놓고 신문업계의 반발이 고조되고 있다. 신문업계의 비공식적 불법 관행에 대한 법적 조치가 구체화하니 부담을 느낄 것이다.
주체가 정부임을 기화로 정부의 언론 탄압으로 매도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정부보다 시민단체와 언론학 연구자들이 이전부터 주장해오던 내용이다. 그러니 '탄압'이라는 말로 호도해서는 안 된다.
고시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업자나 소비자 모두 법적 혼란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부분을 명확히 밝혀 불법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합법적 조치이다.
불법 관행이 뿌리를 내려 그것이 불법인지도 모르는 신문시장의 경우 더욱 필요하다.
무가지 살포, 경품제공은 독자에게 득이 되는 것이니 무엇이 문제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독자 개인의 선호 문제가 아니다.
언론 상품은 좀 나쁘더라도 공짜이니 참고 쓰면 되는 상품이 아니다. 각자 가장 나은 상품을 선택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언론 상품의 질이 아닌 우월한 자본력을 통해 신문 시장이 좌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존 신문 사이의 정당한 경쟁은 물론 새로운 시장 진입도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독과점 시장의 논리에 좌절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신문고시의 내용에 대한 찬반 논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무가지 비율을 10%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은 20% 이상으로 하자고 한다. 이런 가운데 15%로 합의가 이뤄지는 듯 한 데 이는 문제 해결의 의지가 후퇴한 결과이다.
경품 제공도 연 구독 대금의 10% 정도는 인정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신문은 어디서 이윤을 남기겠다는 것인가. 사실이 그렇다.
지금 신문들은 판매시장에서는 적자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울 정도이다. 월 구독료가 1만원인데도 무가지와 경품제공지원비 등을 감안하면 3,000원 이하로 지국에 공급되는 실정이니 말이다.
신문을 팔면 팔수록 손해라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강제투입 허용 기간 역시 늘리자고 한다. 상품 맛보기는 필요하다. 그러나 기간이 길수록 제 살 깎기가 심해질 뿐이다.
그런데 왜 주장할까. 독자를 늘려 광고주에게 팔겠다는 것이다. 독자를 늘리려면 언론 내용으로 승부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무가지, 강제투입, 경품 제공에서 발생하는 손해를 일부 담당해온 것은 지국이었다.
신문사와 지국간 불평등한 지위 관계가 이를 감수하게 한 것이다. 이를 시정하는 것이 법의 당연한 역할 아닌가.
한편에서는 자율 규제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전에 있던 신문고시 폐지 이후에 불공정 경쟁이 줄어들고 있지 않음은 시장 지배 사업자들의 영향으로 자율 규제가 유명무실함을 입증하고 있다. 소수 독과점 신문이 아닌 전체 언론 시장의 발전을 위해 최소한의 규제는 불가피하지 않을까.
김서중·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반대] 업계, 자율개선 효과 확연 5대신문 점유율 70%미만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남대문시장에 간 적이 있다. 볼 일을 본 후, 친절한 종업원에게 어느 후보를 찍겠냐고 물었다.
미소만 짓기에 "고건 후보가 어떠냐"고 했더니 "그 사람이 누구냐"고 되물었다. 물론 그는 신문을 읽지 않았다. 후보자가 누구인지 몰랐으며, 선거일엔 놀러 갈 계획만 세워놓았다.
고려대 신문방송연구소가 1996년 조사한 '신문이용과 지식격차'연구에 따르면, 국민의 13%가 신문을 구독하지 않았다.
이 비율은 2년 후 필자의 조사에서 15%로 늘어났다. 더 나쁜 뉴스는 젊은 세대일수록 열독률이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수업시간에 "오늘 신문을 읽은 학생,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 손 든 학생은 단지 대여섯 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은 TV와 달리 신문을 읽을수록 지방자치와 환경문제 등 공공에 관한 지식이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즉 일간지는 뉴미디어의 거친 도전 속에서도 국민의 지식수준을 높이고, 이성적 판단기준을 제공하며, 건전한 민주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런 신문을 규제하기 위해, 2년 전에 폐지됐던 '신문고시'를 부활시키려 한다.
이러한 정책은 업계의 자율개선 방향과 위배된다. 시장경제의 자유경쟁 원칙에도 물론 어긋난다.
공정위가 제시한 지난 3년간의 자율규약 위반건수를 살펴보면 신문고시는 지금 당장 부활할 만큼 그렇게 시급한 사안이 아니다.
지난해 경품과 무가지 제공의 위반건수는 각각 216건과 289건이다. 통상적으로는 불만을 가진 소비자의 4% 정도가 신고를 한다.
이를 신문 상품에 적용해 역으로 추산하면 경품과 무가지 제공의 실질적 위반은 보수적으로 잡아봐야 1만5,000건 미만이다.
국내 신문 발행 부수를 1,000만으로 잡았을 때 0.2%가 넘지 않는다. 지난해 강제투입 위반 건수는 1,427건으로 전년도보다 무려 57%나 줄었다.
여기선 자율개선 노력의 효과가 확연하다. 지금 정부가 개입해야 할 만큼 신문시장이 혼탁스럽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것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조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무가지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국민은 응답자의 1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중 상당수가 교육과 소득수준이 낮으며, 최근에 이사한 젊은 세대주일 가능성이 높다. 즉, 판촉 활동으로 사회의 특정 계층에게 양질의 정보가 무상으로 배포되며, 신문구독의 동기를 유발하는 순기능이 분명히 존재한다.
한국 5대 신문의 시장 점유율은 70% 미만이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명시된 '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100분의 50 이상'이거나 '3 이하의 사업자 시장점유율 합계가 100분의 75 이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가뜩이나 어려운 신문업계의 생존노력을 독점규제나 공정거래 위반 행위로 다스릴 근거가 약하다.
정치적 결정이 아니라면 이 시점에서 신문고시안을 서둘러 제정할 이유가 없다.
심재철·고려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신문고시는 어떤 내용
신문고시 부활을 둘러싼 논란의 시발점은 2월 28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신문사의 불공정거래 규제를 명분으로 '신문업의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 및 기준'(신문고시)을 제정, 시행하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언론 개혁이냐, 탄압이냐에 대한 논란이 일고있던 터라 신문고시는 더욱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놓은 초안의 주요 내용은 ▦신문사 무가지 배포비율을 전체 부수의 10% 이내로 제한하고(현행 신문협회 공정경쟁규약에는 20%) ▦3일 이상 신문을 강제로 투입하지 못하며 ▦1년치 신문대금의 10%에 초과하는 경품 제공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규제개혁위원회는 3월 28일 이 안을 검토한 결과 신문고시를 부활할 명분과 근거에 대한 논거가 미흡하다며 심의를 유보했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무가지를 기존 보급소에는 10%까지 허용하되 신설 보급소에 한해 초기 3개월간 15%까지 허용하고 신문 강제투입허용기간도 3일에서 7일로 늘이며 신문발행업자가 판매업자에게 불리한 행위를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했다.
규제개혁위원회 경제1분과위는 11일 이중 강제투입허용기간 연장을 통과시키고 발행업자가 판매업자에게 불리한 행위를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은 삭제했으며 무가지 관련 내용은 13일 열리는 전체 회의에 상정키로 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97년 신문고시가 시행된 적이 있다. 96년 7월 신문확장을 둘러싸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지국장 사이에 살인극이 벌어질 정도로 신문판매전쟁이 극에 달했을 때다. 그러나 99년 1월 규제개혁차원에서 폐지되고 언론계 자율 규제에 맡겨졌다.
현재 신문고시제를 도입한 대표적인 나라로는 일본을 들 수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에 따르면 일본은 1954년 독점금지법에 의거, 신문업에 대한 특별고시를 제정해 차별정가나 가격인하, 초과부수 및 과잉부수를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62년에는 독점금지법에서 분리된 경품표시법에 따라 경품 제공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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