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피두센터가 오픈하기 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됐던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는 지금 폐허나 다름 없는 곳이다.천정과 기둥, 계단만 남겨져 있는 건물. 하지만 올 11월 이곳은 파리 센강변의 또 하나의 명소가 될 전망이다.
젊은 예술가들이 미래 세대를 위하여 다양한 방향의 예술형태를 제공하는 복합예술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퐁피두센터, 쥬드폼므(시립현대미술관) 등 파리에는 문화예술 공간이 많지요. 하지만 국제적인 현대예술에 대해서는 뉴욕이나 런던에 뒤지는 것 같아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팔레 드 도쿄가 문을 엽니다."
한창 공사 중인 팔레 드 도쿄의 사무실에서 만난 초대관장 제롬 상스(Jerome Sans ㆍ41)는 이곳을 시각예술뿐 아니라 디자인 건축 영화 패션 문학 전자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새로운 형태의 전시방법으로 소개되는 '살아있는 공간' 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시회 패션쇼 음악회 영화시사회 등 각 장르에서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예술의 프리뷰 장소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문화적 게토' (Ghetto: 유대인 거주지역을 나타내는 단어로 비평적이고 부정적인 격리상태의 장소를 뜻함)에서 보여주었던 상이한 장르의 예술을 한자리에 묶는 최초의 시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아직은 실체를 알 수 없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복합예술공간에 대한 새로운 운영계획은 다양한 문화수요에 아무런 논의도, 대책도 없는 우리에게 확실히 문화에 대한 시각을 넓혀주는 소식이었다. "문화의 시작이 꼭 번듯한 건물일 필요는 없지요.
이미 존재하는 건물에 최소한의 리노베이션 비용으로 공간을 재정비하려고 합니다." 제롬 상스는 창문은 그대로 이용하고, 벽은 하나 정도만 더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총면적 7,000㎡. 1㎡에 2,500프랑이라는 저예산이다. 1층은 전시장, 2층은 사무실로 꾸미고 부대시설로 식당, 서점, 컨셉스토어 등도 마련될 예정이다.
"프랑스와 국제무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예술을 소개하고 자극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려는 것입니다.
교육적이며 열려있는 방식으로 운용하려고 합니다." 제롬 상스는 그런 이유에서 오픈시간을 낮 12시에서 밤 12시까지로 정했다.
일반 관람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일상적인 업무시간을 피한 것이다. "우리가 지양하는 것은 단순한 현대예술센터를 넘어서서 모든 이들이 참여할 수 있고, 언제나 무엇인가 진행되고 있는 '살아있는 공간' 입니다. "
불어만이 통용어였던 파리의 다른 예술센터와 달리 이곳은 영어, 아시아 언어가 가능한 인력을 확보, 다양한 나라의 관객들과도 대화가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또 "입장료가 없는 센터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 이라면서 "이를 위해 폭넓은 스폰서를 구하기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고 말했다. 공동관장제로 또 한명의 관장은 니콜라 부리오이다.
팔레 드 도쿄는 매달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서울 ,인도, 뉴욕에 가지 않으면 만날 수 없었던 젊은 작가들을 파리로 불러들여 1~3달 머물게 하면서 퍼포먼스나, 개인전, 그룹전 등에 참여케한다는 계획이다.
단기 전시회는 1주일에서 1달, 장기전시회는 최장 3개월로 해 늘 새로운 오프닝이 넘쳐나는 장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팔레 드 도쿄가 원하는 새로운 세대의 작가란 어떤 작가일까. 제롬 상스는 25세이하의 젊은이만 소개하는 공간은 아니라고 말했다.
25세의 작가가 될 수도 있고, 45세의 작가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원로 작가들도 포함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들의 개인전은 피할 예정이다.
또 대학원과정 같은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세계 각국의 젊은이를 초대, 1년동안 파리에서 작업활동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 프로그램 같은 것도 운용해 볼 계획이다.
재원은 프랑스 정부가 조달한다. 연간 800만에서 1,000만 프랑을 문화성이 지급한다. 또 부족한 경우 개인 스폰서도 구할 예정이다.
팔레 드 도쿄는 5월 오프닝 프로그램 '도쿄 TV' 를 통해 파리 현대복합예술센터의 탄생을 세계에 미리 알릴 계획이다.
20여명의 국제 작가들이 35분에서 60분까지 다양한 길이로 참가하는 프로젝트로 케이블TV 와 인터넷 TV방송을 통해 방영된다.
"예술은 삶이며, 매일매일에 대한 반영이죠. 예술은 삶의 사치스러운 장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 끊임없이 우리를 일깨우는 질문입니다." 그는 예술은 대화라고 했다.
세계의 서로 다른 개체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 팔레 드 됴쿄가 뿜어낼 새로운 예술의 에너지가 기다려진다.
세계각국을 활동무대로 독립큐레이터 선두주자
■초대관장 제롤 상스
요즘 국제미술계에서 가장 뜨고 있는 독립큐레이터는 제롬 상스(사진), 후안 루(중국),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스위스)이다.
99년 베니스비엔날레 감독이었던 하랄드 제만이 1세대라면, 이들은 2세대의 선두주자들인 셈이다. 이들 잘 나가는 독립 큐레이터들의 특징은 세계각국을 활동무대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제롬 상스도 마찬가지.
99년 베니스 비엔날레 덴마크 관의 공동 큐레이터였으며, 2000년 대만 비엔날레의 공동 큐레이터로 일했다. 지난해 11월 로댕갤러리에서 ' 나의 집은 너의 집, 너의 집은 나의 집' 을 기획하기도 했다.
이미 4차례 내한했던 그는 한국의 젊은 예술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새로운 세대의 예술이 너무 침체돼 있어요.
새로운 작가의 작업을 소개할 장소조차 마땅치 않지요. 경제적으로 강한 나라임에 반해 아직 갤러리들은 작가들을 위해 충분히 공간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파리=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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