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총풍' 사건의 실체를 사실상 부정했다. 1심 재판부가 정치적 배후를 부인한 데 이어, 항소심 재판부는 사전 모의와 계획조차 없는 우발적 해프닝으로 규정했다.탁구공 만한 사건을 농구공 크기로 부풀렸다고 본 판결은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의 진실성에 심각한 의문을 갖게 한다. 대법원 상고심이 남아 있지만, 국기를 문란케 했다고 난리 친 것이 도무지 황당하기만 하다.
98년 10월 불거진 총풍 사건은 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청와대 행정관과 대북 사업가 등이 모의, 북쪽 인사들에게 판문점 무력시위를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당시 이 후보 등 한나라당의 연계 여부는 계속 수사한다고 밝혔으나 여권은 이를 기정사실화 하고 이 총재의 대 국민 사죄를 줄곧 촉구, 지루하고 극한적인 정쟁의 빌미가 됐다.
지난해 12월 1심 재판부는 사건을 '배후없는 자작극'으로 규정, 혼란을 남겼다. 재판부는 사건이 피고인들의 과잉 충성에서 비롯됐지만, 범행 모의와 총격 요청만으로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라며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검찰 기소의 골격을 수용한 판결이지만 아무런 배후 없이 엄청난 공작을 꾸몄다는 점이 납득하기 어려웠고, 이 점에서 무리한 타협적 판결로 비쳤다.
이와 달리 항소심 판결은 무력시위 요청을 개인의 우발적 돌출발언으로 규정, 음모성을 전면 부인했다.
피고인들이 범행을 모의했다는 자백의 임의성과 신빙성을 부정하면서, 돌출발언의 가벌성(可罰性) 자체를 낮게 보았다. 피고인들이 북측과 접촉한 것을 유죄로 인정하면서 집행유예로 석방한 배경이다.
법률적 시비는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가릴 일이다. 문제는 재판에서 정치적 배후와 음모성이 차례로 부인될 사안을 두고, 검찰이 지레 야당 총재의 연루의혹을 떠든 것이다.
검찰이 그 뒤 배후 수사를 계속하지도 않은 사실은 정치 싸움에 빌미만 제공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 사건이 국민에게 준 충격과 뒤이은 혼란의 책임을 생각한다면, 검찰과 정치권은 조용히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본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