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올리기 전, 희미한 조명 아래 깔리는 첼로 소나타의 암울한 소리가 불길한 운명을 예고한다. 맨 마지막, 집시풍의 처량한 아코디언 선율은 1시간 50여분 동안 펼쳐진 세 자매의 불행을 위무한다.극단 백수광부의 '세 자매'는 기대와 배반, 절망과 견딤에 대한 연극이다. 테크노의 맹공과 뮤지컬의 화려함을 삶의 시간들로 이겨 나간다.
"조금만 더 지나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 무엇 때문에 우리가 괴로와 하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것만 알 수 있다면!" 두 동생을 보듬는 언니 올가의 음성은 마침내 젖어 든다.
1900년 러시아의 외딴 도시로 여단장 아버지를 따라, 한창 꿈에 부푼 20대 후반의 세 자매가 이사온 지 11년이다.
연극은 초라한 응접실을 중심으로, 그들이 5년 동안 겪은 시간의 속내를 펼쳐 보인다. 모스크바의 화려함에 길들여진 그들은 춥고 메마른 소도시 생활을 어떻게 견뎌 낼 것인가.
막내의 생일이자, 아버지의 기일이다. 자매는 결혼 실패, 유부남과의 사랑, 무의미한 직장 생활 등 각각의 이유로 모두 똑 같이 지쳐 있다.
예기치 못한 불행의 힘은 이들을 더욱 옭아 맨다. 그나마 생활의 탈출구였던 애인은 결투 등에 휘말려 죽고 만다.
"새로울 것은 없어요. 오히려 느림의 연극이죠. 아픔과 좌절을 겪어 본 자라면 공감할 수 있겠죠" 성적 표현, 테크노, 주변 영상 매체와의 접합 등 젊은 연극인이라면 으레 시도하는 '연극적 장치' 가 전혀 없다고 연출가 이성열씨는 말했다.
이 연극은 그래서 천연덕스럽다. 지난 3월 22일 막을 올린 후, 회당 평균 70~80여명의 젊은 관객들이 극단에 나지막이 힘을 실어 준다.
지난해 '고래가 사는 어항'으로 한국연극협회의 '베스트 공연'상을 수상한 극단의 자신감이 투영돼 있다.
연극원 김미희 교수는 "열악한 연극 현실 속에서 피어 오른 모처럼의 체홉주의(Chekhovian) 연극" 이라고 말했다. 기승전결도, 설명도, 시간 구분도 없는 이 연극은 더욱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두명의 김미자(32, 30)씨와 정진희(28)씨가 세 자매로 분한다. 22일까지 연우소극장.
화~목 오후 7시 30분, 금ㆍ토 오후 4시30분 7시30분, 일 오후 3시 6시. (02)764- 8760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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