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죠? 평소 얌전하던 여자 애들이 돌만 잡으면 난폭해져요. 여자 아이들의 바둑은 처음부터 끝까지 난전(亂戰)의 연속입니다."경기 분당에서 어린이 바둑교실을 운영하는 강준열(44ㆍ전국바둑교실협회장)씨. "조용하고 내성적인 여성일수록 전투형 기풍이 많다"는 것이 그의 체험론이다.
'여성=전투형'의 등식은 프로 무대에서도 통용된다. '철녀'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이나 '여전사'박지은 3단 등 뛰어난 성적을 내는 여류 스타들은 한결같이 소문난 싸움꾼들이다.
개별적인 편차야 있겠지만, 허점만 보이면 가차없이 공격을 퍼붓는 호전적인 바둑, 전형적인 전투형 기풍이 여성 바둑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남자 기사들은 어떤가. 물론 '바둑 두는 사람의 기질과 성향'(기풍)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제각각이고, 성격이라는 것이 워낙 복잡하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둑 돌이 갖고 있는 두 가지 기능, 즉 영토(집)를 만드는 기능과 전투를 하는 기능 가운데 바둑 두는 이가 평소 어느 쪽에 무게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그의 스타일을 따져볼 수는 있다.
돌을 운용하는 스타일로 볼 때 기풍은 크게 실리형과 세력형, 전투형의 세 가지로 대별된다.
실리형은 3선 이하의 귀와 변을 중심으로 집(실리)을 먼저 확보한 뒤 타개에 나서는 형태이고, 세력형이나 전투형은 눈 앞의 실익보다는 장기적인 가능성 내지는 잠재력을 염두에 두고 4선 위의 중앙을 크게 도모하는 바둑이다. 중앙의 두터움을 근간으로 상대의 엷은 곳을 공략한다는 점에서 세력형과 전투형은 '사촌지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필연적으로 '엷음'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실리형과 '두터움'을 토대로 한 세력형ㆍ전투형은 상극의 관계다.
'집념의 승부사'조치훈 9단을 위시해 일본의 초창기 실력자 '면도날' 사카다 에이오(坂田榮男) 9단, 중국의 마샤오춘(馬曉春) 9단, '야생마'서봉수 9단 등은 본능적으로 집을 차지하기 좋아하는 실리형의 대표 주자들. 한편 맹목에 가까운 중앙예찬론자들로, 일명 '허무류'로도 불리는 세력형에는 '우주류'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 9단과 모양 바둑의 대가인 강철민ㆍ조대현 8단 등이 포진해 있다.
전투형에는 일본의 '대마 킬러'가토 마사오(加藤正夫) 9단과 '세계 최고의 공격수' 유창혁 9단, '손오공'서능욱 9단, 루이나이웨이 9단을 비롯한 대다수 여성 기사들이 손꼽힌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반상을 지배하고 있는 바둑은 실리형도, 세력형도, 전투형도 아니라는 점이다. 실리(엷음)와 세력(두터움) 양쪽을 중시하는 절충형, 극과 극이 조화를 이루는 정반합(正反合)의 기풍이 바둑계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다. 이 중 현재 최고의 기풍으로 각광받고 있는 주류가 '두터운 실리형'. 꾸준히 실리를 챙기면서도 세력바둑의 두터움을 견지하는 형태다. 대표 주자는 '세계 바둑 1인자'이창호 9단.
이 외에 '차세대 선두주자'최명훈 7단을 비롯한 국내 저단진 신예 기사들, 중국바둑의 간판스타 창하오(常昊) 9단과 저우허양(周鶴洋) 9단, 일본의 '평명류'다카가와 가쿠다(高川格) 9단과 '이중 허리'린하이펑(林海峰) 9단 등이 여기에 속한다.
전형적인 전투형이 저돌적으로 난전을 즐기는 형태라면 여기에 실리형의 장점을 가미해 유연성까지 겸비한 '전투적 실리형'역시 현대 바둑의 큰 물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바둑황제'조훈현 9단을 위시해 이창호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 '불패소년'이세돌 3단, '괴동'목진석 5단 등 속력행마의 달인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진감과, 다양한 묘수와 기수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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