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귀가만 하면 컴퓨터 먼저 켜고 중요하지도 않은 듯한 이야기를 이메일로 열심히 주고받는 것이 딱 질색이다.'미안합니다'를 '만함다', '이만'을 '20000', '이메일'을 '이멜'식으로 쓰는 것도 참 싫다. 권위를 무시하듯 문법을 무시함으로써 얻는 즐거움이 클까 싶다. 큰 아이에게 '하양늑때'라는 ID 이름으로 이메일을 보낸 사람을 보고는 "'늑때'라니 유치해서, 참!"하고 미워한 적도 있다.
이메일을 주고받는 시간이 긴 편인 나는 이메일의 효용성을 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보세요, 기자 양반!"으로 시작되는 이른바 헤이트 메일(hate-mail)이 대책 없이 올 때, 은사로부터 '원고, 마지막 독촉'이라는 메일이 올 때도 그러하지만, '66개 메시지 읽지 않았음'이라는 문구가 보이면 도망가고 싶어진다.
"이메일은 왜 생겨가지고는."이라는 기분까지 든다. 동전에 앞면과 뒷면의 두 면이 있듯 이메일에도 좋은 앞면과 나쁜 뒷면이 있지만 종종 좋은 앞면을 잠깐 잊는 것이다.
이메일에서 도망가고 싶어질 때면 좋은 면을 돌이킨다. 주소만 알면 세계 어느 곳의 그 누구에게도 즉각 이야기 건넬 수 있어서 오늘 신문들이 해외출장을 가지 않고도 이메일 인터뷰를 하게 된 건 얼마나 다행인가 되새긴다.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첨부파일로 간단히 보낼 수 있음도 참 다행이라 되새긴다. 원고나 디스켓을 우체국에 들고 가 찢어질까 깨질까 조심조심 부치던 불편하던 때를 기억하는 것이다.
얼마 전의 뉴욕타임스 기사(nytimes.com/2001/03/29/technology/29WRIT.html)에 따르면 이메일은 또 하나의 좋은 국면을 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누구나 이메일을 이용, 글쓰기를 하는 시대를 열었다.
그러고 보니, 수많은 어른들이 학교에서의 글쓰기 때와 달리 문장부호 맞춤법 띄어쓰기에 주눅들지 않고 또 '좋은 글=엄숙한 글'이라는 등식에서 벗어나 자신이 전달하고싶은 내용 중심의 편지들을 쓰고 있다.
맞춤법 문법 통사론을 파괴하고 멋대로 축약형 단어를 쓰고 영어 화자들은 대ㆍ소문자를 구별하지 않고 쓰니 규범문법의 사망쯤으로 받아들여질 법도 하나, 말하듯이 쓰는 자연스러운 글, 이모티콘(감정표시를 위해 문자를 조합한 사람표정의 그림)을 이용한 재치있는 글의 탄생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18세기에 서양의 지식인들이 우아한 편지를 주고받아 사양의 서간문학이 싹 텄듯 10년 후 좋은 이메일 글이 간행되어 또 하나의 서간문학을 열지 모른다는 전망을 하는 학자들도 있다.
인터넷에는 이메일을 활용한 좋은 사이트가 많다.
아이들이 인기연예인에게 이메일을 쓰도록 부추겨 돈벌이에 성공한 사이트(celebrityemail.com)도 있지만, 학생들의 역사 공부를 도와줄 친구를 교사가 구해주는 사이트(teachers.net/mentors/social_studies/topic513), 역사에 관한 질문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응답해주는 역사 교수들(colorado .edu/history/email.htm)의 사이트도 있다.
활용하기 나름이라는 진리는 이메일에도 있다. 이메일은 미국의 대기업들이 직원해고 소식을 알리는 데 악용되기도 하나, 회사원들이 음료자판기 앞에서 끝없는 수다로 시간을 죽이지 않고 짧은 시간 안에 동료와 전달사항을 주고 받는 데 선용되기도 한다.
레이 톰린슨이라는 이메일 소프트웨어 첫 저자가 1972년 처음으로 이메일을 보내면서 "아무거나"하며 골랐다는 '@'기호를 보면서 오늘도 미소가 먼저 나온다.
박금자 편집위원
park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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