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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문학기행..' 발길마다 思惟…나그네적 글쓰기 참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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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문학기행..' 발길마다 思惟…나그네적 글쓰기 참맛

입력
2001.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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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문학평론가인 김윤식(65) 서울대교수는 말한다."투어리스트(관광객)는 몇 주 간, 길어도 몇 달 후면 집으로 돌아오기를 전제로 하고 출발한다. 자기의 귀속된 공간을 결코 잃고자 하지 않음, 그러기에 그의 어떤 체험도 순간적이자 통과적이어서, 엄살의 일종이 아닐 수 없다. 트레블러(나그네)는 이와 질적으로 다르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인의 속성이 거기 작동하고 있다. 그에겐 다만 이동이 있을 뿐이다. 어떤 곳에도 뿌리박지 않음, 세월을 문제삼지 않음."

김 교수가 새로 낸 책 '김윤식 문학기행 - 머나먼 울림, 선연한 헛것'(문학사상사 발행)은 한 트레블러의 발길과 사유의 자취다.

그는 '귀환 불능'에 빠질지도 모르는 트레블러의 속성을 글쓰기의 기원과 연결시킨다. 진정한 글쓰기란 삶에 대한 엄살이 아니라, 일상적 삶을 전혀 다른 지경으로 빠트리는 '귀환불능성의 노래'라는 것이다.

이 책은 김 교수가 몽골과 네팔, 티베트, 중국, 연변, 일본을 여행한 기행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트레블러라 자칭하진 않는다.

하지만 발길 닿는 곳에서마다 우리 문학사와, 동서고금의 사상ㆍ철학을 꿰뚫어 보는 문장이 나그네적인 글쓰기의 맛을 보여준다.

이 책은 아마 김 교수의 101번째 책일 것이다. '아마'라고 하는 것는 스스로도 자신의 저술목록을 정확히 모를 정도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낸 현장평론집 '초록빛 거짓말, 우리 소설의 정체'가 공식적으로는 100번째 저서로 되어있지만 문학사가, 평론가로서 믿기지 않을 정도의 왕성한 활동을 해온 그의 작업을 저서의 숫자로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하지만 이번 책은 남다른 소회가 실린 책으로 읽힌다. 김 교수는 올해가 정년이다. 최근 2~3년간의 여행기를 묶은 이 책 군데군데서 그는 평생에 걸친 한국문학 읽기에 대한 감회를 내보인다.

1970년 이광수 연구를 위해 처음 찾았던 일본 도쿄대학을 30년만에 다시 찾은 그는 도착한 날 밤 숙소 유리창에 어리는 자신의 모습에서 유령을 본다.

"그는 왜 그토록 눈에 불을 켜고 남의 나라 땅의 대학 서고 속을 분주히 헤매었던가., (지금) 유리창에 유령처럼 어리는 것, 늙어서 초라한 그의 얼굴이었다"고 중얼거린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그간 찾아헤맨 것이 '들리지 않는 울림'이자 '보이지 않는 헛것'이었다고 말한다. 그 울림과 헛것이야말로 '순수감각의 길'이라는 것이다.

문학사 연구자로, 또 현장비평가로서 "자료의 시체들에 덜미를 잡히지 않고, 작품이 쳐놓은 그물에서 슬기롭게 벗어나기" 위한 필사의 도주가 길떠나기로 이어졌다고 고백한다.

문학기행은 목이 조이는 듯한 연구와 비평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표현자의 감각'을 찾기 위한 3박자 글쓰기의 숨통트기였다는 것이다.

몽골초원의 겔에서 문득 바라본 밤하늘의 별에서 그는 그 '울림'을 듣는다. 네팔 카트만두의 허름한 서점에서 그의 눈은 일본 작가 가지야마 도시유키(梶山季之)가 쓴 소설 '이조잔영(李朝殘影)'의 낡은 문고판을 발견하고 트레블러의 길과, 식민지와, 오리엔탈리즘에 이르는 광대한 사유의 행로를 펼친다.

중국 여행길에는 김동리와 강태공을 오가며 공자의 '지천명'의 의미를 들려준다. 안내인들에게 평론가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고약한 자로구나' 하는 기색이 스쳐가는 것을 보며 "평론이란 남을 까는 짓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남을 칭찬하는 교묘한 술책이라는 점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으랴" 생각하기도 한다.

스스로 한국 근현대문학의 바다에서 귀환불능의 나그네가 되어, 그 바다의 참모습을 밝히고 그것을 독자에게 알려주려 평생을 애써왔던 김 교수의 속내와 드넓은 사유의 세계를 음미할 수 있는 책이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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