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정찰기 사건을 놓고 중국과 명분없는 소모전을 치르는 틈을 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세계를 무대로 어느 때보다 활발한 실리외교를 펼치고 있다.9~10일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도 푸틴의 실리 경제노선이 이끌어낸 외교적 성공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회담에서 양측은 최대 현안인 독일에 대한 소련의 부채 약 64억 루블을 출자전환키로 사실상 합의, 오랜 외교적 장애물을 해소했다.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어 유럽경제 최강 독일이 소련의 부채를 사실상 탕감해 줌으로써 유럽과 러시아의 경제 밀착은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1년 남짓한 취임기간 중 18개국 이상을 순방, 최다 정상회담 기록을 이미 갈아치운 푸틴의 외교는 유럽 뿐 아니라 중동, 아시아 등 전방위로 진행돼왔다. 특히 신고립주의를 주창한 부시 행정부가 중동, 발칸 등 세계 주요 분쟁지역에서 손을 떼면서 생긴 공백을 절묘하게 역이용, 세계 외교무대는 러시아를 중심축으로 형성되는 분위기다.
미국의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京都)의정서 파기와 중국ㆍ북한에 대한 강경노선도 러시아의 외교적 입지를 넓혀주는 요소로 작용했다.
전문가들이 보는 푸틴의 외교는 경제적으로는 유럽, 정치ㆍ안보면에서는 중동ㆍ아시아와 손을 잡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35% 수준인 유럽과의 무역비중은 유럽연합(EU)의 확대로 50%까지 높아지고, 러시아 내 외국투자의 절반 이상이 유럽기업을 통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달 모스크바에서 잇달아 열리는 이집트, 시리아 등 아랍권과의 회담에서는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회담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이 강도높게 논의될 예정이다. 이 달 말로 알려진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도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 등 강경 보수노선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란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가 분쟁지역에서 중재자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경제적으로는 미국 의존도를 줄임으로써 향후 대미 관계에서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외교기조를 "어떠한 유일 초강대국의 출현을 용납하지 않는 것" 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런 점에서 러시아에게 미국은 중요한 여러 파트너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유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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