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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소설 마이너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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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소설 마이너리그

입력
2001.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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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도 흔들어 봤지만…가늘고 길게 살기 꿈꿨지"소설가 은희경(42)씨가 신작 장편소설 '마이너리그'(창작과비평사 발행)를 출간했다. '마이너리그'는 한국사회의 '비주류'를 일컫는 상징적 표현이다.

'지식인들은 언제나 자기의 시대를 위기라고 말해왔다. 그들처럼 간뇌도지(肝腦塗地)를 부르짖으며 간과 뇌수로 바닥을 칠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우리는 그런 인생이 아니다. 그래서 잘못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가늘고 길게 살고자 했던 소박한 꿈을 이루지 못해 분해 할뿐이다.'

소설은 이렇게 생각하는, 1958년 개띠로 태어난 지방도시 고교 동창생인 지극히 평범한 남자 4명의 인생 유전의 이야기다.

흔히 '오팔 개띠'라 불리는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전후의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나 60~70년대 우리 사회의 근대화 경험과 함께 청소년으로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에서 10ㆍ26과 '광주'라는 현대사의 커다란 고비를 만난다.

6월항쟁에서는 화이트칼라로 주먹도 흔들어보았지만, IMF 이후에는 전전긍긍하며 '가늘고 길게' 살 것을 꿈꾸며 살아간다.

작가는 우리 사회의 흔한 보통 사람들, '2류 인생'의 흔들리는 삶의 역정을 경쾌하고도 익살스런 필치로 그려냈다.

주로 여성적 삶을 다룬 그의 작품에서 보이던 다소 무거운 윤리의식이나 냉소적 시선 대신, 허세과 치기로 가득 차 좌충우돌하는 남자들의 세계에 대한 유쾌한 보고서다.

주인공 김형준과 배승주, 조국은 고교 시절 이웃 여고의 아리따운 여학생 소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인다.

소희는 엉뚱하게 다른 친구 장두환과 야반도주한다. 4인방 중 두환이 빠진 3명은 그런저런 대학으로 진학하고 현대사의 커다란 사건들과 마주친다.

이들에게 두환이 다시 돌아온 것은 6월항쟁이 절정에 이를 무렵이었다. 소희는 이미 죽어버렸다. 김형준은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조국은 엉터리 사진작가의 조수로, 배승주는 '사업 구상업'을 직업처럼 살아간다. '내가 끌고 가는 삶의 시간이 가시처럼 목구멍을 깊숙이 찔러'오는 것을 느끼면서.

작가는 이런 겉 이야기 속에 이소룡과 임예진과 통기타 같은 70년대의 풍속, 긴급조치와 월남 패망, 재일교포 간첩단사건 등 사회변화를 풀어놓고 있다.

은씨는 단지 한 세대의 성장소설이라기보다 작가는 "사람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태어나 살아가고, 또 일그러지는가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침 영화 '친구'가 화제를 모으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정황은 비슷하지만 '친구'와는 주인공 세대나 설정은 다른 소설이다.

여성의 이야기를 많이 써온 은씨는 "삶의 마이너리티 안에서의 동료애가 남성성에 대한 신랄함을 벗어나 나를 세상의 남성과 화해하게 했다"고 남자 이야기를 쓴 이유를 말한다.

소설 서문에 작가는 자신이 이번 작품을 쓸 수 있도록 도와준 남자들의 이름을 죽 열거해놓았는데, 그 중에는 노태우 전두환씨 등 낯익은 이름도 들어있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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