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인질사태로 백악관을 내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아선 안된다."출범 12주째를 맞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미군 정찰기와 중국전투기 충돌사건이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자 이란 인질사건의 여파로 재선에 맥없이 실패한 카터 전 대통령의 악몽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초조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8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부시 대통령이 지난 주 중반을 고비로 갑자기 중국에 대해 '유감' 표명 등 유화제스처를 보내며 막후교섭에 나선 것은 카터 전 대통령의 선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훈수가 결정적이었다고 분석했다.
1979년 11월4일 이란주재 미국대사관을 이란 학생들이 점거한 채 무려 444일간이나 인질극을 벌이는 바람에 1980년 재선에 나선 카터는 로널드 레이건-조지 부시를 러닝메이트로 내세운 공화당에게 정권을 거저 내주다시피 했다.
당시 공화당은 이란 인질사건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지며 '유약한 민주당정권의 종식'을 쟁점화했는 데 바로 이 전략을 이끈 사람이 아버지 부시였다. 승무원 억류의 장기화가 2004년 재선출마에 암초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아버지 부시가 아들에게 사건의 조기해결이 최선이라고 조언한 것도 당연하다.
부시 대통령은 이번 사건 초기만 해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콘돌리사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으로부터 사건을 보고받은 그는 중국에 승무원ㆍ기체의 즉각송환과 사과를 요구하는 등 강공책을 구사했다.
그러나 주중대사를 지낸 덕에 국가적 자존심을 최대의 외교목표로 삼는 중국문화의 특성을 잘아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공세수위를 낮추도록 충고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억류사건이 장기 인질사태로 변할 경우의 폭발력을 새삼 깨달은 부시 대통령은 실종된 중국조종사에 대해 유감을 밝히고 조종사부인에게도 답신을 보내는 등 한풀 꺽인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부시 대통령은 요즘 매일 새벽 5시반에 라이스 보좌관으로부터 간밤의 사태진전을 보고받는 것으로 집무를 시작하는 등 사건해결에 전력투구중이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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