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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윤락…18세 소녀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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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윤락…18세 소녀의 고백

입력
2001.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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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전쯤 가냘픈 여자아이가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국립서울정신병원을 찾아왔다. 그리고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마약 중독자예요. 제발 좀 고쳐 주세요."마약 중독자가 찾아와 치료를 자청한 것은 극히 이례적. 눈을 크게 뜬 병원 관계자에게 A(18)양은 힘없이,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다신 지옥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A양은 9일 금단(禁斷)현상 탓에 "눈앞에 벌레가 어른거린다"며 연신 손사래를 치면서 지난날을 털어놓았다. 그의 충격적인 고백에는 마약과 미성년 노예매춘, 인신매매 등 우리 사회의 끔찍스런 단면이 모두 다 담겨 있었다.

4년전 아버지와 함께 서울로 전학온 A양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데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된 게 계기가 됐다. 죽은 줄 알았던 엄마가 14살 어린 나이에 자신을 낳고 종적을 감췄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가출한 A양은 직업소개소의 '숙식 해결' 말만 믿고 덜컥 단란주점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윤락은 14살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수치스럽고 힘겨웠다. "주인이 낙태 수술비를 빚으로 옭아매려 피임조차 못하게 했어요. 구타와 감금에 지쳐 자포자기하면서 한 아저씨가 준 히로뽕을 맞기 시작했습니다."

무료로 제공되던 약은 A양이 중독될쯤 끊겼다. 이 때부터 A양은 아저씨의 강요에 따라 닥치는대로 마약판매에 나섰다. 그러길 1년. 하루에 7차례나 투약해야 할 정도로 중독이 심각했던 A양의 빚은 5,000만원까지 늘어났다.

결국 A양은 빚으로 인해 2년전 속칭 '미아리 텍사스'의 D업소로 팔려갔다. 여전히 마약조직의 족쇄에서 풀려나지 못한 채 낮에는 마약을, 밤에는 몸을 파는 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다 미성년윤락 단속이 강화된 지난 여름, A양은 마침내 감금돼 있던 업주 집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살아야겠다"는 절박한 생각에 이를 악물고 마약의 유혹에 맞섰지만, 견디다 못해 환각성분 감기약을 과다복용하기도 했다. 청소년 쉼터 등을 전전한 끝에 A양은 마지막 구원처로 현재 입원해있는 정신병원을 생각해 냈다.

무엇보다 A양이 신변위협마저 무릅쓰고 자신의 일을 언론에 알리려 한 이유는 '친구'들을 구하고 싶었기 때문. "업주들이 윤락녀들을 숨겨두거나 지방으로 팔아 넘겼을 뿐, 미성년 윤락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또 같이 일했던 친구들 상당수가 마약 중독자지만 도움받을 곳이 없어요. 마약을 구하는 것보다 치료받을 곳을 찾는 게 더 어렵습니다."

요즘 치료받는 틈틈이 요리학원을 알아보고 있는 A양의 꿈은 '마약 청소년 쉼터'의 요리사가 되는 것. "마약을 하게 되면 식욕이 떨어져 위까지 상하게 되거든요. 그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이제는 희망의 한자락 끝을 잡았다는 생각에 한결 평온해진 A양. 지옥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미아리 시절'의 일기장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다.

'손님이 변태적인 성관계를 원했다. 수치심에 거부했지만 결국 돈 앞에 무릎을 꿇었다.

더러웠다. 손님을 죽이고 싶었다. . 오늘 또 산부인과에 가서 낙태수술을 받았다.

너무나 슬프고 아기가 불쌍하다.. 여기서 일하는 언니, 친구, 동생들 모두가 마약 중독자가 되어간다. 나는 이제 마약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 새들이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걸 보았다. 나는 언제쯤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을까. 우리에게 괸심조차 없는 사회가 원망스럽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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