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은 스코필드(우리 이름 석호필ㆍ石虎弼)박사가 돌아가신 날이다. 1970년의 일이다. 임종을 지켜드린 나는 이 날을 잊을 수가 없다.그는 우리보다 한국을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다. 캐나다 출신 선교사로 3ㆍ1독립운동 당시 일본인들의 잔학상을 세계 만방에 폭로하다가 국외로 추방당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를 민족대표 33인에 더해 34인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외국인 중 처음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된 이가 바로 스코필드박사이다.
그는 불의와 부정부패를 보면 호랑이처럼 무섭게 화를 냈다. 때문에 호랑이 할아버지란 별명을 얻기까지 했다.
1960년대의 일이다. 나는 한국전쟁때 공산군에 의해 파괴된 종로 YMCA회관을 다시 짓느라내가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나는 그때 노환으로 누워있는 스코필드박사의 병상으로 가끔 문병을 갔었다. 그러면 그는 내게 20달러도 주고, 50달러도 주곤했다.
회관을 재건하는데 보태 쓰라면서. 본국서 연금을 받거나 본국 친척들로부터 돈을 받아 살았기 때문에 매우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윤보선 대통령이 돈을 얼마나 주더냐고 물었다. 돈을 준 적은 없지만 YMCA를 무척 사랑한다고 했더니 정색을 하고 하는 말이 "돈없는 사랑은 사랑 아니오"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어찌나 감명을 받았던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이 말에 나는 큰 용기를 얻어 YMCA 회관을 재건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또 이 한마디는 나의 인생관을 바꿔놓았던 것이다. 성경에도 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고, 마음이 있는 곳에 돈이 있느니라 했다.
나라를 사랑한다면서 돈 한푼 안내면 그것은 나라사랑이 아니며 돈을 낼 때 무슨 대가를 바라고 낸다면 그것도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은 하나의 평범한 진리이다. 구태여 성경을 인용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진리이다. 그러나 누구나 실천하기는 어려운 진리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실천하기 어려운 진리를 나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실천할 수 있게 한 분이 바로 호랑이 스코필드박사였다.
그가 돌아가신 후 침대를 정리하다가 베개 밑에서 유서가 발견됐다. 00고아원에 얼마를, 00에게 얼마를 주라는 간단한 유서였다.
그의 지갑을 꺼내 돈과 수표를 계산해 보았더니 주라는 돈 중에서 약 2,000달러가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그 부족액을 따로 장만해 그의 유언을 다 이행했다.
전택부·YMCA 명예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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