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한 지난달 29일은 한국언론과 인천국제공항 공사 강동석(姜東錫ㆍ61) 사장의 내기가 벌어진 날이다.결과는 강 사장이 이겼다. 공항이 그대로 개항하면 엄청난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대한민국 모든 언론의 예측은 빗나가고 공항은 지금까지 순조롭게 운영되고 있다. 기자도 당연히 언론 편이었다.
기자는 한국일보 안에서 개항연기론을 앞장 서서 주장했던 사람 가운데 하나다. 여태 이런 일은 드물었다.
여론_언론의 비판_을 무시한 정책이 잘 된 적이 없고 여론을 무시한 소신이 성공한 적이 없었다. 의약분업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그는 성공했다.
적어도 현재로써는. 한 '지도자'가 '최후의 결정'을 내릴 때의 심정은 어떤 것이며, 여론이 틀릴 수 있음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은 어디서 비롯되는가가 궁금해서 그를 만났다.
_개항연기론이 대세였는데 개항을 '강행'한 배경은 무엇인가. 결과적으로 언론의 비판이 틀린 것으로 나타났다.
"공항을 개항하는데 가장 본질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건 비행기의 안전 이착륙이 보장되느냐 이다. 승객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미 여섯 달 전에 미국 연방항공청(FAA)으로부터 우리 공항의 첨단장비로 미루어 세계 어느 공항보다 안전할 것이라는 판단을 받아놓아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이번에 언론이 문제 삼은 것은 수화물처리 시스템인데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해도 20분 혹은 30분 정도의 지체가 예상됐는데 항공기는 한 시간 이상 지체가 있어야 연발착이라고 하는 것이 국제적 관행이다.
또 지금 세계 어느 공항에서도 정시운항 비율은 20%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연히 예정대로 개항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어떻게 보면 언론이 문제 삼지 않아도 될 걸 문제로 부각시킨 점이 있지만 열 번 점검할 걸 스무 번 점검하고, 스무 번 점검할 걸 마흔 번 점검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고마운 측면도 있다."
_불안 요소가 전혀 없었나. 개항 바로 전날밤에는 무슨 생각이었나.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정신이 멍해진 적이 있다. 언론이 지적한 모든 문제를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정상 개항이 가능하다고 보았지만 예정일이 다가오면서 내가 너무 목표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는 문제와 허점이 있지는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다시 점검하고, 물었다. 특히 신공항을 가장 많이 이용할 국내 항공사 사장들에게 많이 물었다.
그들은 우리가 문제가 없다고 해도 문제를 찾아내 시정을 요구할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이제 와서 흔들리면 어떻게 하느냐, 용기를 내라'고 했다.
또 어떤 이는 '새 집에 들어가도 몇 달은 손을 봐가면서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도 말해주었다. 개항 당일에는 새벽 세시에 자리에 누웠는데 오로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옛말만 생각났다. 달리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99.99%는 내가 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하늘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_잘못 됐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예비계획과 비상계획을 따라 운영됐을 것이다. 준비된 시스템 대로 하면 혼란은 줄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만일 잘못된다면 목숨을 끊는다는 생각도 했던 듯 하다. "개항이 실패했을 때 속죄하는 마음으로 목숨을 스스로 저버린다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죽음으로 사죄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겠는가. 내 목숨을 공항의 성공적인 개항과 맞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건방지다고 스스로를 꾸짖었다.
그 다음부터는 모든 걸 다 걸었다. 그 동안 배운 것, 내 정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쳤다. 덕분에 친척이나 친구를 만나거나 사회적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1994년에 신공항건설 책임자로 부임한 그는 97년에 공사장 한 켠의 컨테이너 하우스로 거처를 옮겼다. 2년 전에는 부인도 이곳으로 옮겨왔다.
20피트 짜리 컨테이너 두 개를 붙인 것인데 앞으로도 당분간 머물 계획이다. 출퇴근이 힘들어서 옮겼다고 말했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공사를 해오면서 귀를 막고 살려고 했다. 서울에도 안 가고 사람도 안 만났다. 사람을 만나면 '사장 자리가 흔들린다'느니 불필요한 이야기를 듣게 되어서 였다.
정말 쓸데 없는 이야기가 들리는 게 지난 몇 년간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정적인 요소들이다."
_그래도 한 자리에 7년이나 머무르지 않았는가.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인천국제공항공사가 기반이 안 잡혀 있는 공기업이어서 일의 연속성을 확보하라는 의미에서 계속 일을 시킨 것으로 본다. 아는 사람이 계속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지 않나."
_같은 무렵 발족한 고속철도공단은 그 동안 책임자가 다섯 번이나 바뀌었다. 그곳도 기반이 안 잡힌 곳이고, 일의 연속성이 필요한 곳인데?
"글쎄‥."
_신공항 건설사업은 5조6,000억원이 들어간 대역사다. 유혹이 많았을 것 같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유혹이 왜 없었겠는가. 특히 건설공사와 관련해서 유혹이 많았다. IMF때는 건설회사들이 일감이 없어서 일을 따내는 것이 일차적 목표였다. 업체 모두가 결사적이었다. 돈은 안 남아도 좋으니 일만 달라며 유혹해온 곳도 있었다.
세계적 공항인 인천공항에서 일을 하거나 납품한 사실 자체가 마케팅에 중요한 실적이 되는 실정이었으니 채산성을 떠난 과열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공명정대'를 원칙으로 삼고 일을 처리했다. 우선 내 마음을 다스리고 의지대로 일을 했다. 유혹에 흔들릴 일이 없었다."
그는 이어서 우리나라 공공 건설공사의 부실은 발주자의 책임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내 돈 내고 내 집을 짓는데 건축업자가 술 사주고 돈 준다고 대충 짓는 걸 눈 감아줄 수 있나.
그러나 우리나라 공공사업의 대부분은 그런 식이다. 국가가 하는 사업이 내 사업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한 부실공사가 이어질 것이다."
_국가 공사를 책임지면서 자기 집을 짓는 것처럼 정성과 공을 들일 사람이 과연 있을까?
"공공사업을 책임진 사람은 '선량한 관리자'가 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공항공사에 인쇄물을 납품하게 해달라는 학교동창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 아직도 욕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_아래 사람이 유혹에 빠지는 건 막을 수 없지 않나.
"그들도 생활인이니 유혹에 빠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맙게도 신공항 공사를 하면서 아직까지 독직사건에 연루된 직원은 한 명도 없다.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본다. 내가 사업의 전과정을 알기 때문에 부정이 발생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정말 신공항 건설사업에서는 다른 국책사업에서처럼 뇌물수수는 없었다고 자신한다."
_지금까지는 신공항 개항이 성공적인 것 같다. 앞으로 남은 일은 무엇인가.
"우리 공항이 갖추고 있는 최첨단 시스템을 풀가동하고 싶다. 한 달이나 석 달이면 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인천국제공항은 화물처리 능력에서는 명실공히 3년 내에 세계 3위의 허브공항이 될 것이다.
여객처리에 있어서는 5년 내지 10년이면 확실한 허브공항이 될 것이다. 여객수송에 있어서 허브공항이 되기까지는 보통 20년 걸려온 걸 생각하면 정말 빠른 것이다."
그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는데 그의 한 참모가 두 쪽짜리 문서를 건네주었다.
'그리스 아테네 신공항 문제점 요약보고'라는 제목이 적혀있었다. 인천국제공항이 문을 열기 하루 전에 그리스 아테네 신공항이 개항했는데 하루 만에 전자통신 시설과 탑승수속 단말기 시설 등에 문제가 생겨 둘째 날부터 모든 비행기가 평균 두 시간 이상 운항이 지연됐으며 네 편은 운항이 취소됐고, 셋째 날에는 23편이, 넷째 날에는 34편이 취소됐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공항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데도 문제가 많답니다. 이만 하면 우리가 얼마나 준비를 잘 했는지 아시겠지요?"라고 그 참모가 말했다.
아테네 신공항은 원래 올 9월께 개항할 예정이었는데 21세기에 첫 개항한 국제공항이라는 '영예'를 인천공항에 뺏기지 않으려고 개항을 서두른 결과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내년 4월이면 임기가 끝나는 그에게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할 거냐고 물었더니 '실패사례'를 모아 회고록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성공적으로 개항은 했지만 내가 봤을 때 실패라고 할 만한 부분이 많다. 또 서구의 기준으로는 성공일지 몰라도 한국기준으로는 실패한 것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런 것들을 모아 책을 내면 다음에 있을 대역사에 큰 참고가 될 것이다."
_예를 들면 어떤 것인가.
"우리나라는 계획과 설계를 중요시 하지 않는다. 오랜 퇴고를 거쳐야 좋은 시가 나오듯 설계도 오래 동안 되풀이해야 하는데 서두르다 보니 엉터리가 나오고 그 상태에서 공사에 들어가니 공사 중에 설계를 변경 하는 일이 많다. 그런 이야기를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처럼 기록하고 싶다."
그는 공항 건설을 지휘해오면서 매일 해둔 메모와 모아놓은 자료가 이 인천국제공항 회고록의 기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회고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편집국 부국장
so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