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만 보는 애틋한 감정,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애만 태우는 안타까운 눈길..21세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순정'이 브라운관을 달구고 있다.
SBS '아름다운 날들'(매주 수ㆍ목 밤 9시55분)은 그 선두에 있다. 당초 이 드라마는 방송가의 이면을 다룬 '순자'에 이어 가요계의 뒷얘기를 소재로 한 것으로 주목받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점차 고전적 멜로의 면모를 짙게 띠고 있다.
부드럽고 속깊은 선재(류시원)가 연수(최지우)에게 보내는 애틋한 시선, 철두철미하고 강인한 남자 민철(이병헌)이 연수에게 언뜻언뜻 비치는 여린 감성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달뜨게 만든다.
SBS게시판에는 연일 '민철과 연수를 이어주세요''선재와 연수의 사랑은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는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 시한폭탄처럼 묻혀 있는 선재의 출생비밀과 신분상승을 꿈꾸는 세나(이정현)와 선재의 사랑 등이 얽혀 이 드라마는 온전히 '멜로'가 될 가능성이 크다.
KBS '비단향 꽃무'(월ㆍ화 밤 9시50분)도 애틋한 순정을 그리고 있다. 죽은 형의 아이를 낳아 기르는 영주(박진희)에 대해 우혁(최민용)은 차마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녀 곁을 맴돌며 사람들을 안타깝게 한다. 우혁은 자신의 처지와 숫기없는 성격 때문에 더욱 표현을 주저하는 전형적인 '순정남'이다.
순전히 신분상승욕으로 여경에게 접근했다 점차 연정을 느껴 야반도주에 이른 '순정화'한 건달 수철(안재욱ㆍMBC '엄마야 누나야'), 가난한 고시준비생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이는 무용교사 지혜(유서진ㆍSBS 아침드라마 '이별없는 아침'), 무뚝뚝하고 선굵은 심성에도 사랑하는 여자를 변함없이 '해바라기'만 하는 호태(박상민ㆍKBS '태양은 가득히') 등, 순정만화를 옮겨놓은듯한 KBS '가을동화'를 필두로 사극을 제외한 모든 드라마에 '순정형'주인공이 등장했다고 해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세대 시청자들도 자신과 주인공을 동일시해 안타까운 사랑에 뜨거운 동정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브라운관의 순정 열풍은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CF로 대표되는 신세대들의 당당한 연애관과 언뜻 상반된다.
불과 2~3년 전에 드라마를 지배하던 과감한 사랑 고백과 결별, 남의 애인을 쟁취하던 공격성, 싫으면 여지없이 '차버리던'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아름다운 날들'의 작가 윤성희씨는 "자기 감정 중심인 신세대들도 고전적인 사랑에 매료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특히 '순정'의 바람은 점차 각박해지는 세상살이를 눈물겨운 순정으로 씻어내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경제난 때문인지 특유의 당당함에 거품이 빠지고 점차 솔직한 속마음을 비치기 시작하는 신세대의 심리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