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경제 회복을 위해 엔화의 평가절하를 용인했다는 소문을 시발점으로 엔화는 급격한 평가절하가 시작되었다.우리 원화의 대미 달러 환율도 덩달아 급등하여 1,400원대를 위협하게 되자 지난 주 한국은행은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힘입어 원화가치는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외환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은 항상 상당한 위험을 수반한다. 외환시장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예측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97년 한국은행은 무모하게 환율방어를 위해 시장에 개입하여 아까운 외환 보유고만 날리고 외환위기를 가속화시킨 적이 있다.
물론 그 당시와 달리 현재 정부는 1,000억달러에 가까운 외화를 보유하고 있으며 경상수지도 100억 달러정도의 흑자를 구현하고 있다.
현재 환율 1,350원 수준은 외환위기 직전의 900원과 직후의 1,800원 선의 중간이다. 물가, 금리 및 성장률 등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을 감안하더라도 현재의 환율은 균형에서 크게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불안한 점도 많다. 3월달 수출은 23개월만에 감소세로 돌아서 전년 동기대비 0.7% 감소하였다. 외국인투자도 19.1%나 감소하였다.
직접적인 원인은 일본경제의 장기침체가 계속되고 미국경제의 경기둔화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우존스와 나스닥 지수가 연일 폭락과 반등을 되풀이하는 현상에서 보듯이 미국도 경제불안 심리가 팽배해 있다.
우리같이 대외의존도가 큰 중간 규모의 경제에서는 해외 불안요인은 몇 배로 증폭되어 수입된다.
과거 몇 년간 엔화와 원화의 환율을 보면, 1엔당 11원 수준을 유지하였다. 사실상 원화가치가 일본 엔화에 고정되었던 셈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의 경우, 교역비중이 높고 경제구조가 비슷한 인근의 큰 국가의 통화에 자국통화가치를 고정시키는 것이 유리하다.
왜냐하면 외부로부터의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고 경제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최적 통화지역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원화가치를 엔화에 연동시키는 것은 합리적이다. 문제는 중심통화인 엔화가치가 안정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이 경제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엔화를 인위적으로 평가절하지 않도록 국제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것도 검토해봐야 한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쟁적인 평가절하에도 불구하고 위안화를 평가절하시키지 않은 중국의 예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일본의 엔화절하는 동아시아 국가들로 다시 한번 경쟁적인 평가절하를 유발하여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환율이라는 것은 환율 자체로는 관리가 되지 않는다. 우리 경제가 전체적으로 탄탄해져야 환율도 안정이 된다.
그런 점에서 너무 느리다는 지적을 받아온 4대부문 개혁을 더욱 가속화해야 한다. 그 동안 100억불이상의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실업과 혼란이 예상되는 개혁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세계경제상황이 불리하게 변한 현재는 그럴 여유가 없다. 더욱이 정치적 이유로 경기를 부양하고 재정지출을 확대해서는 안 된다.
부실기업이 생존하여 계속 아까운 자금을 낭비하고 경기부양으로 수입이 증대되면 경상수지 흑자는 곧 사라진다.
우리 경제는 다시 한번 경제위기, 나아가 외환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경제 구조가 부실한 상황에서 외부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특효약은 없다.
지속적인 개혁을 통해 경제체질을 개선하고 재정건전화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이렇게 할 때만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가 회복된다. 그래야만 대외내 투자가 활성화되고 소비수요도 증대되어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
홍기택·중앙대 교수 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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