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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대한민국은 '소모인간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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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대한민국은 '소모인간사회'

입력
2001.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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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초고속인터넷 인구가 미국과 홍콩을 따돌리고 세계 1위에 올랐다고 한다. 우리의 '빨리빨리'근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또 하나의 확실한 증거인 것 같아 조금 씁쓸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보기술산업의 앞날이 밝다는 좋은 징후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기왕에 초고속으로 중무장했으니 허구한 날 음란사이트만 뒤지지 말고 가끔은 정말 삶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찾았으면 한다.

우리나라 네티즌들에게 언제 시간이 나면 세계보건기구(WHO)의 홈페이지를 방문해볼 것을 권유한다. 그곳에서 세계 각국의 연령별 사망률을 비교해놓은 도표를 찾아 보라.

참으로 충격적인 통계수치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면 가히 '엽기적인' 정보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든 남성의 사망률이 여성의 사망률보다 높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현상은 다른 동물사회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수컷이란 워낙 '짧고 굵게' 살다 가게끔 진화한 동물이다. 번식의 기회를 얻기 위하여 암컷에게 잘 보여야 하는 동물들의 수컷은 번식기 내내 변변히 먹지도 못하며 오로지 성애에 탐닉한다.

그러다 기진맥진하여 죽는 수컷들도 있고 근근히 목숨을 부지한다 해도 그 해 겨울을 넘기기 어렵거나 이듬해의 성 편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기 일쑤다.

여러 암컷을 거느리기 위해 미리 수컷들끼리 권력 다툼을 벌여야 하는 동물의 경우에도 수컷들의 삶이 처절하기는 마찬가지다.

으뜸수컷이 되려면 항상 위험한 격투를 겪어야 하는데 그런 몸싸움에서 언제나 성한 몸으로 걸어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운이 좋았건 힘이 셌건 으뜸수컷이 되고 나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밤낮없이 경계를 게을리 할 수 없다. 또한 자기가 거느리는 후궁들을 늘 즐겁게 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권력구조의 외곽으로 밀려난 수컷들이라고 해서 자신의 처지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조용히 수절의 삶을 살 수는 없다.

그들 몸 속의 유전자가 그들로 하여금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도록 부추긴다. 그래서 변방의 수컷들은 늘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산다.

그리고 어렵사리 기회가 오면 과감하게 승부를 건다. 수컷들의 세계는 이처럼 늘 경쟁의 그림자에 휘감겨 있다.

자연계의 거의 모든 동물에서 수컷들이란 본시 이렇듯 무모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이 같은 무모함은 번식적령기의 수컷들에게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도 엄연히 포유동물이다 보니 이런 점에서 예외일 수 없다. 어느 사회든 한결같이 20대, 30대 남성의 사망률이 여성의 사망률에 비해 무려 세 배나 높다.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남성이니라. 세계보건기구에 통계자료를 제공한 모든 나라의 경우 이 같은 현상은 거의 완벽하게 동일하다.

어느 나라든 남녀의 사망률은 비슷하게 시작하여 20대와 30대에 엄청난 차이를 보이다가 40대로 접어들며 서서히 비슷해지는 곡선을 그린다. 경제력과 문화에 상관없이 포유동물의 특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그 그래프에서 유일하게 40대, 50대로 들어서며 남성의 사망률이 점점 더 치솟는 나라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나라 말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 40대와 50대 남성들의 목숨이 가장 파리목숨에 가깝다는 명확한 증거이다.

나는 지금 일본 동경대학의 동료들과 함께 이러한 현상들을 진화생물학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곧 이 기이한 현상에 대한 원인을 단순히 스트레스로 돌리는 수준 이상의 연구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한 마디로 '소모인간사회'다. 요사이 나라 경제가 말이 아니지만, 나는 우리 나라가 또 다시 후진국으로 전락할 위험은 없다고 본다.

적어도 경제적인 면에서는 말이다. 그렇게 되도록 가만히 앉아 있을 우리가 아니다. 무슨 짓이든 악착같이 할 것이다. 그래서 어떠한 난국이든 반드시 극복하고야 말 것이다.

역사가 그를 증명하고 있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근성을 믿는다. 그래서 '은근과 끈기의 민족'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 같은 고난과 극복의 역사는 나라 전체의 수준에서 분석하고 자위할 수 있을 뿐이다.

이른바 집단 수준의 평가일 따름이다. 그 집단을 이루고 있는 성원의 수준에서 이 현상을 다시 한번 분석해보면 엄청나게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들의 근처를 맴돌기 위해 그야말로 '발악'을 하는 동안 그 성원들의 삶의 질은 과연 어떠한가.

목적 달성을 위한 소모품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근대화의 급물살 속에 우리 사회는 어느새 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동안 써먹다가 효용가치가 떨어지면 가차없이 버리고 새로 만들어 쓰는 부분품사회가 돼버렸다. 할 수만 있다면 이 광란의 기계에서 뛰쳐나와 내 삶의 속도를 내 뜻대로 조절하며 살고 싶다.

서울대 생명과학부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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