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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김종학 개인전 "설악산만 보면 그림이 쏟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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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김종학 개인전 "설악산만 보면 그림이 쏟아져요"

입력
2001.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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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의 힘 때문일까. 요즘 중진 서양화가 김종학(64)씨는 설악산 토왕성 폭포처럼 그림을 쏟아내고 있다. 마음의 굴곡이 심해 그림 그리기가 괴로워지면, 전시회를 앞두고도 막무가내로 붓을 놓아 주위를 난감하게 했던 그다."그림이 안될 때는 웅덩이에 고인 물처럼 여겨졌던 미술이 요즘은 폭포수처럼 느껴져요. 쉽고 재미있습니다." 외설악 입구인 설악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아주 기분 좋은 모습이었다. 아니, 13~23일 서울 박여숙화랑(549-7574)에서 3년 만에 갖는 개인전 때문에 조금은 흥분된 모습이었다.

'설악산 풍경', 2001년작.

그의 작업실은 설악산의 사계가 장엄하게 바라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4월의 설악산은 피어나기 시작하는 신록으로 한껏 아름다웠고, 그의 그림도 부지런히 봄의 색깔을 입고 있었다.

서둘러 피어난 버들강아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철쭉 개나리 산수유, 재빠른 동작으로 물고기를 잡아채는 물총새, 덤불 속에서 아련히 모습을 드러낸 보랏빛 할미꽃.. 그림들은 대부분 그려진 지 얼마 안된 것인지 아직 꾸덕꾸덕했다.

"요즘 1시간 반 정도밖에 못 잡니다. 낮에는 산만해서 작업을 못하고 주로 밤에 그리지요.

화가는 예순부터, 시인은 일흔부터라고 했던가요. 요즘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작업실로 내려가지요. 네 시간만에 완성한 그림도 있어요. "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샘솟는 의욕으로 그려낸 작품은 아름답고 화려했다. 팔레트가 따로 없이 작업실 바닥에 발로 짠 그림물감들은 그가 얼마나 급한 마음으로, 또 순간적으로 작품을 완성해냈는지 알 수 있었다. 동양화에서 중요시하는 '기운생동'이 저절로 떠올려졌다.

설악산인이 된지 벌써 20여년. 그러나 그에게 설악산은 늘 새롭다. "먹이를 찾아 헤매는 맹수처럼, 낮에는 온종일 설악산 덤불 속을 헤치고 다니지요. 도깨비라는 별명도 얻었고, 늘 다리는 상처 투성이입니다.

머리 속에 담아두기가 벅찰 때는 즉석에서 배낭 속 화구를 꺼내 스케치하기도 하지요. 보통 가을과 여름에 설악산을 많이 찾지만 저에게는 겨울과 봄의 설악산이 더 아름답게 느껴져요. 설악산의 뼈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적 불행 때문에 숨어들다시피 했던 설악산이었다. 한때 심수봉 노래만 들으며 폭포 속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겠다는 절박한 상태에 빠졌던 그가 설악산에서 '물도 보고 달도 보고 꽃도 보면서, 다시 배우고 먹고 자라난 것'이다.

"죽어서 관 뚜껑이 닫혀야 비로소 저도 정확한 평가를 받겠지요. 화가로 태어나 100점은 남기고 싶습니다. 아직 10점밖에는 못 그린 것 같아요." 자신의 작업을 500년, 1,000년을 내다본 싸움이라 표현하면서 그는 "욕심없고 착하고 정직한 화가들만이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고 말했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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