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밤 서울 영등포역 앞 유흥가 밀집지역. 느닷없이 입간판 '철수작전'이 벌어졌다.약속이라도 한 듯 각 업소별로 종업원 2~3명이 밖으로 튀어 나와 부랴부랴 입간판을 가게 안으로 들여 놓기 시작했다.
종업원이 유흥가를 뛰어다니며 다른 업소들에게 '입간판 단속'을 알렸고, 다른 업소의 종업원은 연신 휴대폰으로 '신호'를 보내는 장면도 목격됐다. 이 시각, 바로 옆 길가에는 트럭 2대에 나눠 타고 온 공무원 10여명이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최근 들어 에어라이트(풍선형 입간판) 등 불법 입간판에 대한 서울시의 단속이 시작되면서 단속을 교묘히 빠져나가려는 각종 기발한 수법이 동원되고 있다.
시는 실적에 따른 자치구별 보조금 지원을 약속하며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업주들의 수법이 '첨단'을 달려 단속 실적이 목표의 절반 수준에도 못미치는 실정이다.
■'시간차형, '보초형' 등 다양
업주들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수법은 '시간차형'. 단속이 밤 9~10시에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점을 '악용', 오후6시께 미리 입간판을 설치한 뒤 9시 전에 치워놓고 다시 밤 11시께 슬며시 세워놓는 수법이다.
서울시가 시간대를 2~3차례로 나눠 단속을 실시하기도 하지만 단속반 인원이 분산돼 큰 효과를 보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초형'도 늘어나고 있다. 업소별로 단속 전담 '감시병'을 두고 문 앞이나 길거리에서 대기하다가 단속반이 인근에 나타나자 마자 재빨리 입간판을 치우고 시치미를 떼는 방법이다. 이로 인해 단속반과 '감시병'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도 흔히 목격된다.
신종 수법인 '당번형'도 눈길을 끈다. 유흥업소 밀집지역에서 업소별로 당번을 정해 1명이 단속반 출동여부를 감시하다 단속반이 나오면 전 업소로 연락하고 공동 대응에 나서 단속반원들을 골탕먹이고 있다.
시 관계자는 "업주들이 입간판을 게릴라식으로 순식간에 설치했다 치우곤 해 막상 단속나가면 평소에 많던 불법 입간판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 놓았다.
■'부자구' 단속 실적 미미
시는 지난 2월 에어라이트 등 불법 입간판을 뿌리뽑겠다고 공언하고, 반기마다 상위 5개구를 선정, 구당 10억원씩의 특별교부금까지 지원키로 했다.
그러나 8일까지 2개월여동안 1만1,794개의 입간판을 철거하는 데 그쳤고 그중 에어라이트는 목표치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1,946개를 수거하는데 그쳤다.
특히 불법 입간판이 집중돼 있는 강남 서초 등 부자구(富者區)들이 비협조로 일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구별 단속을 더욱 강력하게 지도하고 독려해 2002월드컵 이전까지 불법 게시물이 없는 깨끗한 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박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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