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속에서도 생명의 싹은 자라난다.."동해안 일대 산과 들을 송두리째 파괴했던 대형산불이 발생한 지 7일로 1년째. 서울 여의도 면적 78배에 달하는 2만3,448ha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고 300세대(850명) 주민들의 생존의 터를 앗아갔지만, 그속에도 잿더미를 딛고 고사리와 동굴레가 싹이 트고 있었다. 조림사업도 힘을 더해 '검은 폐허'가 조금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푸른 산이 이젠 '사막'
6일 산불예방활동에 나선 강원도 소방헬기를 타고 돌아 본 고성군 일대. 1996년에 이어 지난해 또 산불이 덮치면서 산림이 사막화돼 토사가 제멋대로 흘러내리고 바람만 불면 잿빛 흙먼지와 모래가 날려 눈을 뜨기도 어려워 보인다.
주민들의 불편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시시때때로 불어오는 흙먼지와 모래먼지 때문에 장독을 못 열고 빨래도 널지 못하는 상황이다.
주민들의 소득원이었던 송이밭도 자취를 감춰 생계를 잇기도 어렵다. 이모(56ㆍ여)씨는 "그날의 악몽을 잊지 못해 불면의 나날을 보내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50년후 생태계 완전 회복
절망뒤에는 희망이 찾아오는 법. 피해지역 곳곳에서 나무심기가 한창인 가운데 고비 고사리 쇠뜨기 둥굴레 등 초본류가 자라나 화마의 상처를 서서히 덮어가고 있다.
복구작업도 발 빠르게 진행돼 떡갈나무 참나무 아까시나무 진달래 물푸레 신갈나무 등 활엽수가 원래의 주인이었던 소나무 대신 폐허위에 들어서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0~20년 정도는 활엽수림이 산을 뒤덮은 뒤 50년 정도 지나면 야생동물과 미생물이 안정화돼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산불의 피해와 부작용은 그만큼 지독한 것이다.
■ 폐허속 진달래, 새들의 울음
자연의 생명력은 인간의 복구의 손길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했다. 강릉시 사천면 노동중리 영동고속도로 공사현장 뒷산. 검게 탄 소나무들이 그을음 냄새를 풍기는 가운데 불에 탄 나무들을 베어내는 작업이 진행돼 섬뜩한 느낌 마저 준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이곳에서도 상처에 새살이 돋듯 진달래가 보라빛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계곡쪽에는 버들강아지가 활짝 펴 강한 생명력을 '과시'했다.
사라졌던 꿩이 짝을 찾아 울어대고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도 그치지 않았다. 토끼와 고라니의 배설물도 눈에 띄었다. 생명력이 강한 리기다소나무는 밑둥에서 머리끝까지 온통 새까맣게 탔는데도 어느새 줄기에 푸른 가지가 돋아나고 있다.
강원도와 산림청은 2005년까지 986억원을 들여 산불피해지역에 조림을 실시할 예정. 식생이 완전히 파괴된 지역에서는 피해목을 잘라낸 후 조림(인공복구)하고, 피해가 비교적 적은 지역에는 피해목을 그대로 두는 자연복구방법을 적용키로 했다.
강원도 관계자는 "생태계가 이제야 겨우 산불의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는 상태"라며 "이 곳에 또 불이 나면 영원히 몹쓸 산으로 버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해안=곽영승기자
yskwa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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