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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 폐지운동 / 혈통은 왜 아들만 잇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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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 폐지운동 / 혈통은 왜 아들만 잇나요?

입력
2001.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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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여성단체연합이 여성권익 신장에 기여한 '디딤돌'로 선정한 MBC 드라마 '아줌마'. 여주인공 오삼숙은 남편 장진구와의 이혼 소송에서 이기고 두 아들의 양육권을 받았다.그러나 아이들을 자신의 호적에 입적시킬 수 없음을 몰랐던 삼숙은 사방으로 뛰어다녔지만, 호주제 폐지운동에 서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1년 전 재혼한 30대 가장이라고 소개한 김모씨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호주제 폐지 운동 홈페이지에 재혼 가정의 고충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한 여자가 너무 좋고 또 그 여자의 딸이 너무 사랑스러워 결혼을 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성(姓) 때문에 조금씩 고민을 합니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한 가정에서 성이 아빠는 김, 엄마는 임, 딸은 황."

'출가외인' , '호적을 판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결혼을 말하는 몇 가지 표현들이다. 그러나 21세기 이 땅의 딸들, 아니 한국 사회는 출가외인이나 호적을 파간 딸이 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아들이 혈통을 잇는다'는 전통적 관념에 대한 도전이다. 남계혈통잇기에 근거한 호주제, 종중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변화의 조짐을, 다른 한편에서는 뿌리깊은 인습을 확인했다.

평범한 가정의 주부인 김수연(31ㆍ서울 강북구 우이동)씨는 요즘 기대에 부풀어 있다.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이 3월 29일 호주제 관련 민법조항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김씨 부부는 2000년 10월 강북구청에 호주변경 신청을 했다.

호적상 남편 최모씨가 호주로 돼 있는 것을 무(無)호주로 변경해달라는 것이었으나 현행법상 무호주로의 변경은 법규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이들의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1월 김씨 부부는 서울지법 북부지원에 호주변경 불수리 처분에 대한 불복신청을 냈다.

북부지원뿐만 아니라 서부지원도 3월 27일 호주제 관련 조항이 위헌 소지가 있다며 위헌심판제청을 결정함으로써, 지난 해부터 본격화한 호주제폐지운동에 힘이 실렸다.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호폐모) 같은 자생적 시민단체나 여성단체연합, 여성단체협의회, 가정법률상담소 등 여성 단체들은 지난 해 9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를 결성, 11월 호주제 폐지를 위한 13건의 위헌소송이 시작됐다.

"호적이 옮겨지는 것이 어색하고 불쾌한 생각도 들어서 한동안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김수연씨. 결혼 4년 만에 태어난 아이의 출생 신고를 위해 1998년 어쩔 수 없이 혼인신고를 했다.

김씨는 남편이 장남이어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시아버지가 자신의 호주로 되어 있다고 밝혔다. 시부모는 오래 전 이혼했다.

김씨는 "당장 법이 개정된다거나, 또 호주제가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성차별적인 사회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호주제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고 호주제 위헌소송에 동참한 동기를 밝히면서 "가족의 대표가 꼭 남자여야만 하느냐"고 반문했다.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호주는 법적으로 권리는 없고 형식으로만 존재할 뿐이지만, 남녀 차별의식의 뿌리'라고 주장한다.

특히 아들-손자-미혼 딸-배우자-어머니 순으로 호주 승계 순위를 남성 우선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대를 잇는다는 명분에서의 남아 선호 사상, 출가한 딸에 대한 차별 등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녀를 아버지 호적에 입적하도록 강제하고 있어 이혼 가정처럼 실질적인 가장이 어머니인 경우나 재혼가정에서 자녀가 동거인으로 호적에 표시되는 등 실생활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여성단체연합 김기선미 정책부장은 "현재 호주제는 아버지를 정점으로 가족 구성원을 서열화해 가족내 권력 관계를 형성한다"며 "이혼ㆍ재혼 가족, 홀부모ㆍ미혼부모 가족, 동성애 가족 등 다양해진 가족 형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가 변했으니 호주제를 규정한 법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호폐모 이유명호 운영위원은 "TV드라마에서까지 호주제 폐지 문제를 긍정적으로 다룰 정도로 사회적으로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혼한 딸들을 종중의 일원으로 인정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는 잇따라 패소해 뿌리 깊은 '출가외인'의 전통 관념을 되씹어야 했다.

이원재(54)씨 등 5명이 여성에게도 종중 재산을 균등 분배할 것을 요구하며 용인 이씨 사맹공파 종중을 상대로 낸 종중원지위확인 청구소송에서 3월 25일 패소했고, 성주 이씨 안변공파의 여성들도 이에 앞서 열렸던 재판에서 패소하는 등 법정은 '출가외인'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용인이씨 사맹공파 여성들의 법정 대리인 황덕남 변호사는 "법 테두리 안에 남성 우위적인 요소가 남아있으므로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말했다.

종중 규약에서 종원은 성인으로 한다고 했을 뿐 남녀 혹은 결혼 여부에 따른 차별이 명시돼 있지 않지만, '종중은 공동 선조의 분묘수호, 제사, 종원 상호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 선조의 후손 중 성년 이상의 남자를 종원으로 해 구성되는 종족의 자연적 집단'이라는 대법원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남성혈통 중심주의에 대한 여성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사회에, 가정에, 사람들의 인식에 분명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오랜 세월 쌓아 온 벽이 과연 허물어질 것인가. 아직 그 결과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법원, 호주제 위헌제청 잇달아

호주제 폐지 운동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여성단체연합은 5월 호주제 폐지에 동조하는 남성들의 모임인 '딸들을 사랑하는 아버지 모임'을 발족하고 호주제 폐지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펼칠 계획이다.

호주제 관련 법 조항이 남녀차별적 요소를 담고 있어 위헌 소지가 있다는 법원의 최근 판단이 계기가 됐다.

서울지법 서부지원은 3월 27일 자녀를 자신의 호적에 입적해 달라고 은평구청에 신청했던 이혼여성 양모(34)씨의 불수리 처분 불복신청과 관련, 민법 제781조 제1항의 '자는 부가에 입적한다'는 부분에 대한 위헌심판 제소를 결정했다.

자녀가 속할 가(家)를 원칙적으로 아버지 쪽으로 규정한 것은 부계 중심주의 원칙을 채택한 것으로 남녀의 성(性)에 따라 차별을 두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틀 뒤인 29일 호주제 폐지를 위한 위헌소송 13건 중 가장 많은 6건이 제소된 북부지원도 '일가의 계통을 승계한 자, 분가한 자, 또는 기타 사유로 인하여 일가를 창립하거나 부흥한 자는 호주가 된다'고 규정한 민법 제778조에 대해 위헌심판을 제소하기로 결정했다.

이 조항이 호주에게 우월적 지위를 부여하며,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가족 내 평등한 공동체 형성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민주적 기본질서나 성차별 금지, 개인의 자율적 의사와 양성 평등에 기초한 혼인ㆍ가족생활의 자유로운 형성을 보장한 헌법에 어긋난다는 취지였다.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번 법원 결정이 호주제 폐지를 위한 법ㆍ제도 개선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변호인단의 이석태 변호사도 "지난해 호주제 폐지를 위한 위헌소송을 제소한 지 일주일이 안돼 서울 가정법원에서 기각돼 항고했다"며 "법원이 호주제가 위헌 소지가 있다고 결정한 점이 고무적이며 헌법재판소도 위헌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진행 중인 호주제 폐지를 위한 위헌 소송은 두 범주로 나뉜다. 남편이 호주로 돼 있는 것을 무호주로 변경하고자 하는 경우가 6건이고, 나머지는 친권 및 양육권을 가지고 있는 이혼 여성이 자녀를 자신의 호적으로 입적시키려는 것.

이 변호사는 "특히 무호주로의 변경신청은 호주의 존재를 원치 않는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호주제의 대안은...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가 제안하고 있는 대안은 크게 가족별ㆍ개인별 편제 방식이다. 전자가 평등한 가족관계에 기초를 둔 것이라면 후자는 개인의 권리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가족별 편제 방식

부모와 미혼자녀 2세대를 기본 단위로 하나의 호적에 두는 방식. 실제 보편적인 가정의 형태를 반영하는 모델이고 가족공동체를 중시하는 우리의 정서상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일본은 호적의 기준자가 될 대표를 가족 구성원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양한 가족형태를 포용하기 위해서는 미혼 자녀도 일가를 창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인별 편제 방식

1인 1호적으로 평생 호적에 변화 없이 살아갈 수 있다. 자기 호적만을 책임지기 때문에 가족 중심에서 개인 단위로 진행하는 사회 흐름을 수용하기에 적절한 모델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가족공동체주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사실상 거부감이 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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