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파괴시대'에 맞이하는 신문의 날은 우울하다.언론사가 경쟁 언론사, 정치인이 경쟁정치인, 전직 대통령이 대통령, 경제인이 경쟁경제인을 파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신뢰받는 정치인도, 언론인도 없다.
그 결과 대통령이 각료를, 최고경영자가 부하직원을, 국민이 정부를, 독자가 신문을, 시청자가 방송을 믿지 못하는 불신의 늪에 살고 있다.
신뢰는 사회적 자산이다. 국가신인도, 기업의 신용도, 개인의 신용 등을 모두 돈으로 평가하는 사회이다.
신용불량으로 매도당하는 것은 순간이지만 신용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투자가 따라야 한다는 것은 이미 IMF국제금융위기 때 막대한 교육비를 치루고 얻은 교훈이다.
적어도 언론시장에서 신뢰파괴의 결과는 막대하다. 외부적으로는 계속해서 광고시장에서 신문사가 거두고 있는 파이, 즉 신문의 광고비 점유율이 줄고 있고 방송은 늘고 있다.
또한 인터넷 등 뉴미디어분야의 전문사이트의 등장으로 신문은 쫓기고 있다. 또한 높은 신뢰도를 바탕으로 해외언론은 우리 시장을 넘보고 있으면 상당부분 시장을 잠식했다.
신문산업내부로 눈을 돌려보면 신문사간 헐뜯기, 정부의 언론개혁에 따른 세무조사 등으로 신뢰도는 여지 없이 추락했다.
언론인이 마지막 보루인 자존심마저 와해됐다. 언론인은 이제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선망의 대상이 아닌 지탄의 대상내지 동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신뢰파괴시대의 피해자인 언론도 책임이 크다. 정치권력시대의 언론에 신뢰는 사치였지만 신뢰가 사회적 자본인 시장경제에서 신뢰는 성장의 동력이자 자산이다. 언론사는 이러한 사회변화를 읽지 못하고 신뢰구축에 소홀했던 것이 오늘 이러한 위기의 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동반한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답은 간단하다. 신뢰파괴시대의 언론은 기초에 충실하라는 점이다.
언론의 기초, 즉 신문의 존재의의는 국민의 신뢰에 달려있다. 신뢰받지 못하는 신문 그리고 언론인은 존재가치가 없다.
언론인의 권력은 정치인이나 관료와는 다르다. 언론인의 권력은 국민의 신뢰에 기반한다. 또한 정치인은 한번 국민의 신뢰를 물으면 되지만 언론은 매일매일 신뢰를 평가받는다.
신문은 신뢰하는 사람만이 구독하지만 정치인은 1등만 하면 권력을 잡을 수 있다.
권력은 신뢰받는 신문을 두려워한다. 이점이 언론의 신뢰를 파괴하고자 하는 유혹을 강하게 느끼는 동기이기도 하다.
언론인은 소위 말하는 권력이 없다. 독자의 신뢰라는 무형자산, 이에 근거한 자존심과 실력이 유일한 권력이다. 독자 없는 신문은 신문이 아니다. 특히 독자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신문은 정권에 맞설 수 없다.
따라서 신문의 날에 역설적으로 바라는 것은 신문의 신뢰회복이다. 상실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대가는 혹독하고 엄청난 투자가 따라야 한다.
이미 인터넷 등으로 언론환경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신문의 콘텐츠라는 것을 목도했다.
콘텐츠는 언론인이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언론의 신뢰회복은 언론인의 신뢰회복에서 출발한다. 과거에는 정권에 맞서고 비리를 폭로하면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21세기형 언론인은 전문적 지식과 윤리의식을 추가해야 신뢰받을 수 있다.
우리사회에 투사는 많되 지사는 없다. 언론인은 지사를 지향해야 한다.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객관적 사실로 재단하는 지사를 지향해야 한다.
언론은 국민의 감시견(watchdog)으로서 국민을 지켜주는 파수꾼이어야 한다. 신뢰파괴는 순간이지만 신뢰회복은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신뢰파괴시대, 언론은 신뢰가 사회적 자산(social capital)이자 언론의 권력원이라는 단순한 명제를 되새겨 봐야 할 때이다.
허행량·세종대 교수 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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