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입법예고된 '기부금품모집규제법' 개정안을 놓고 찬반 논란이 거세다. 개정안이 그동안 행자부 장관이나 시ㆍ도 지사의 허가없이도 가능했던 문예진흥기금 등 기부금품의 '모집'을 허가를 받아야 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이에 대해 문화계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공연 등의 후원이나 지원 을 요청할 때 일일이 허가를 받게 되면 기부액가 크게 감소, 문화예술이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경기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 그동안 일부 문화단체의 요구에 기업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기부금을 낼 수 밖에 없었다며 개정안을 지지하고 있다.
[찬성] 지자체 축제등 곳곳 준조세…
작년에 전경련 회원사들이 낸 기부금 규모는 1사당 평균 35억원이었다. 강제성 부담금을 포함하면 대기업은 세금의 평균 13%에 해당하는 96억원을 준조세로 납부하고 있었다.
이같이 과다한 준조세를 줄이기 위해 정부는 작년에 부담금을 정비하고 부담금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부담금관리기본법을 제정하며, 사실상 강요에 의한 기부금품 모집을 규제하기로 했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정부가 입법예고한 기부금품 모집규제법 개정안은 그간 규제에서 제외됐던 문화예술에 관한 기부금품도 허가를 받지 않고는 모금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사실상 기부금에 의존하지 않고는 문화예술 공연이 이뤄지기 어려운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 조치로 문화예술계는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는 우리 현실에서 불가피하다고 본다. 먼저 시ㆍ 군 등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개최하는 문화예술 행사에 기업이 내는 기부금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통계를 보면 97년에 전국에서 412개의 지방축제가 열렸다고 한다. 기업은 인허가권을 가진 단체장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들 행사를 후원하지 않을 수 없고, 전국에 사업장을 가진 기업의 부담은 특히 심하다. 이들 문화행사는 홍보성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아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평이다.
둘째 문화분야에 경제논리가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지만 경제논리가 도외시되면 문화예술도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문화계 풍토를 보면 작품성이 낮아 문화 수요자, 즉 관객의 호응이 낮을 것을 알면서도 공연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수입과 지출 내역이 후원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문화예술 분야라는 특수성을 이유로 이같은 관행이 개선되지 않고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문화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의 문화예산이 2000년에 정부예산의 1%에 도달하고, 금년에는 1조원을 돌파했다.
이같은 문화예산의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비해서 낮은 편이 아니다.
더욱이 세계화가 급속히 진전됨에 따라 기업도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문화발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기업메세나협의회에 따르면 기업이 1999년 문화예술에 지원한 금액은 1,382억에 달했다. 지난해에 626억원으로 줄어들었는데 이는 그만큼 기업의 사정이 어렵다는 반증이다.
한편 ''나눔의 경제'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 경상이익의 1%나 가처분소득의 1%를 사회 공헌에 쓰겠다는 기업과 개인들로 '전경련 1% 클럽'이 3월 발족되었다.
기부금에 대한 세제가 정비되고, 그 내역이 투명해지면 민간의 자발적인 문화예술 지원도 확대될 것이다.
이제 우리도 반강제적인 기부금품에 의존한 문화예술 공연의 양적 확대보다 질적 향상을 도모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작품성에 따라 자발적인 후원이 이뤄지는 풍토가 조성될 때 문화예술도 한단계 발전할 것이다.
신종익·전경련 규제조사본부장
[반대] 선진국 기부문화 요원 현실…
우리의 삶은 알게 모르게 문화라는 대기 속에 뿌리를 드리우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 문화예술을 빼내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황량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 자리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인 문화예술의 자리이다. 하지만 문화예술은 자생력이 없다 보니 초췌한 모습으로 존재해왔다. 그나마 기업이나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지원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문화의 힘으로 21세기를 열어가겠다는 국민의 정부는 의견 수렴도 없이 기부금품 모집규제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기업에 대한 부당한 준조세를 줄여주기 위해' '각종 군소 문화축제 등에 대한 준조세 성격의 무분별한 기부금품 모집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입법을 추진한다는 궁색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말이다.
개정안에서 독소조항인 '전문예술법인의 기부금품 모집규정을 삭제한다'는 조항은 공공의 지원없이는 생존 불가능한 순수예술을 말살시키자는 의도로 비춰지며, '문예진흥기금은 기부자가 용도를 지정하지 못하고 무조건 기금으로 사용한다'는 조항은 그렇지 않아도 저조한 기업과 개인의 기부참여를 더욱 감소시킬 것이 분명하다.
'지역축제행사 등 소요경비에 문예진흥기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조항은 올해를 지역문화의 해로 지정해놓고도, 주민들의 문화향수 기회를 박탈하는 이율배반적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기부금이 보편적인 정서로 자리잡은 선진국의 문화예술 환경과 수준을 보면 부러움과 시기심까지 일어난다.
영국의 한 극장에서 뮤지컬을 감상했는데 평일임에도 빈자리 하나 없었고 손자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오기까지 했다.
대영박물관과 국립미술관에 매표소 대신 설치돼있는 투명한 통 안에 들어있는 지폐와 동전도 보았다. 우리나라 대학로의 극장들이 오버랩 되면서 충격을 받았다.
모든 예술분야가 마찬가지지만 연극의 경우 배우들은 손바닥만한 극단 사무실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채 관객이 즐거워하는 것 하나를 위해 무대에 오른다.
하지만 배우보다 적은 관객으로 공연이 취소되기도 하는 곳이 바로 대학로의 실상이다. 실질적으로 볼만한 공연을 가족단위로 보자면 가계가 적자로 얼룩지기에 엄두를 못내는 것 또한 엄연한 우리 현실이다.
1960년대를 피와 땀으로 일으킨 이들이 산업 역군이었다면, 오늘 정서를 함양시켜 국제화라는 무대에서 우리 국민의 품위를 높이는 이들은 바로 문화예술인일 것이다.
걸음마를 시작한 문화예술계에 이번 개정안은 제대로 된 무대를 강제 철거하는 악법 중 악법이 될 것이다. 무대가 사라지면 그 무대를 현장으로 살아가는 예술인들은 삶의 근거를 빼앗기는 것이다.
물은 막히면 돌아가고 고이면 넘쳐흐르면서, 높은 곳을 깎고 낮은 곳을 메워 형평을 이루는 자연스런 순환을 하고 있다. 문화예술도 흐르는 물과 같아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 삶의 근간을 이루며 흘러가고 있다.
김종헌·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기부금품 모집규제법 개정안
3월17일 입법예고된 기부금품모집규제법 개정안은 준조세를 줄여달라는 재계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전경련은 지난해 6월 준조세 개선을 건의했고 이에 정부는 기획예산처와 행정자치부 문화관광부 보건복지부 외교통상부 국가보훈처 등 관계 부처 실무회의와 장관회의를 거쳐 지난해 12월28일 개정안 내용을 확정했다. 기업은 기부금을 준조세로 보았고 정부도 이를 인정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기부금품을 모집할 때 행자부 장관이나 시ㆍ도 지사의 허가를 받는 것이 원칙이었고 다만 정치자금, 문예진흥기금, 보훈기금, 결핵기금, 국제교류기금은 예외로 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정치자금을 제외한 나머지는 예외에서 제외, 허가를 받아 모집하도록 했다. 여기서 모집이란 관련 단체의 인사들이 기부 대상자에게 기부를 요청하는 행위.
이를 두고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행자부는 모집이 아닌, '자발적' 기부는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발적 기부문화가 없다시피하기 때문에 사실상 기부가 봉쇄되는 것이라고 문화예술계는 주장한다. 이는 문화예술계에 대한 지원이 줄어드는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
기부자가 문예진흥원을 거쳐 문화예술단체에 전달하는 문예진흥기금은 지난해 1,100억원이었으나 올해는 750억원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우리나라의 기부금은 법정기부금, 지정기부금, 기타 기부금으로 나눠진다. 법정기부금은 방위성금, 이재민돕기성금 등 법으로 종류가 명시된 기부금인데 기부금의 50~100%가 손비처리돼 세금이 감면된다. 문예진흥기금도 법정 기부금에 해당한다.
지정기부금은 일정 요건을 갖춘 단체에 주는 것으로 문화예술 분야라면 문화관광부 등록단체라야 한다. 법인은 연 소득의 5%, 개인은 10% 범위 안에서 손비처리 된다.
이 둘을 뺀 것이 기타 기부금이다. 등록 안 된 문화예술단체에 기부했다면 기타 기부금인데 이 때는 손비처리가 되지 않아 세금을 감면받지 못한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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