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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 문화재 죽이는 '날림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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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 문화재 죽이는 '날림복원'

입력
2001.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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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문화재청과 관련 학계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문화 유산인 경주 감은사 터 3층 석탑(국보 112호ㆍ쌍탑)의 동탑 등 국보 문화재가 복원공사를 한지 4년 만에 붕괴위기를 맞고 있으며 경기 광주 남한산성 등 경기도 일대 산성(山城)들이 '불도저식 공사'로 문화재적 가치를 잃는 등 문화재에 대한 인재(人災)가 잇따르고 있다.새로 손을 본 서울의 종묘정전, 전남 화순의 운주사 석불도 훼손되고 있거나 훼손이 우려되고 있다.

지난해 문화재 보수ㆍ복원 예산은 국고 1,685억원과 지방비 1,229억원 등 2,914억원.

올해에도 총 2,843억원이 문화재 보수ㆍ복원 사업예산으로 잡혀있다. 이처럼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오히려 문화재가 훼손되고 있는 것은 보수ㆍ복원 업체의 부실, 부실공사를 예방하고 감독할 전문인력 부족, 중앙과 지방정부의 책임의식 부재 등 3불(不)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문화재 행정을 총괄하는 문화재청의 국보ㆍ보물 담당 학예전문직원은 불과 3명.

1,586건에 달하는 문화재 관리를 한 사람이 500여건 이상 맡고 있는 셈이다.

지방자치단체는 더욱 열악해 서울시는 단 1명의 학예직이 있을 뿐 전체 지자체 문화재 관련 인력(744명)의 4.8%(36명)만이 학예직이다. 이화여대 강우방(姜友邦ㆍ고고미술사학) 교수는 "일본은 문화재 기관 직원의 90% 이상이 학예직이다. 학예직의 수준도 문제지만 현재 숫자론 정상적인 업무도 수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화재 공사는 수리업체 간의 담합과 수주 과정에서의 특혜시비로 얼룩져 있다. 실제 지난해 문화재 복원공사 중 화재로 영업정지를 당한 업체가 경복궁 복원사업자로 선정되는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니 기술향상에 힘을 쏟아야 할 업체들이 줄대기에만 열중, 미흡한 전문성이 그나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미경(李美卿ㆍ민주당) 의원은 "특정업체의 특정지역 공사 싹쓸이 수주, 수리기술자 자격증 대여 등 관련 비리 등이 부실 공사를 부추기고 있다"며 "수리업체 관련 비리 척결을 위한 조치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문화재청은 "지방문화재의 경우 우리는 예산을 지원할 뿐 보수ㆍ복원공사는 해당 지자체가 하는 것"이라며 지자체에 공사책임을 떠넘기고 있고, 지자체는 "국고를 지원받은 문화재 보수공사는 문화재청이 타당성 검토와 사업승인까지 한 것"이라고 훼손에 대한 책임에서 발뺌하고 있다.

엉터리 복원ㆍ보수로 인한 문화재 훼손에 대한 공식 통계도 없다. 문화재청이 인력부족 등을 이유로 대부분 서류로만 공사에 대한 감리ㆍ감독을 하고 있는데다 해당 지방자치단체도 훼손실태를 구태여 보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감사원의 '충청권 문화재 관리실태'에 대한 감사결과, 충남의 경우 99~2000년에 시행된 문화재 보수 공사 170여건 중 절반이 넘는 91건이 심의절차조차 거치지 않고 보수공사를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문화연구소 정승모(鄭勝模) 소장은 "문제가 공론화된 뒤에야 문화재청이 뒤늦게 수습하는 뒷북행정이 반복되고 있다"며 "문화재 복원과 보수를 결정하고, 그 결과를 평가하고, 공사후 문화재를 관리하는 일관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연도별 문화재 보수정비예산

연도 건 수 예산(억원)

98년 708 1,361

99년 770 1,648

2000년 879 2,914

2001년 831 2,843

■감은사 석탑 복원 4년만에 붕괴위기

우리나라의 문화재 복원ㆍ보수 실태는 한마디로 한심한 수준이다.

철조불상이 금동불상으로 둔갑하는가 하면, 석탑에 쇠 조각을 끼워넣어 녹물이 흐르고, 천년을 꿋꿋이 이겨온 국보급 석탑이 복원이후 붕괴위기에 빠졌다.

▼보수냐 훼손이냐▼

문화재청이 지난해 집계한 문화재 보수건수는 모두 879건. 그러나 많은 문화재들이 보수 이후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망가지는 수난을 겪고 있다.

올들어 알려진 '국보급' 부실 보수사례만도 벌써 두 차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경주 감은사터 3층 석탑(국보 112호ㆍ쌍탑)의 동탑과 나원리 5층석탑(국보 39호)이 각각 복원 수리 5년을 못 넘기고 붕괴 위기에 놓여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96년 해체ㆍ복원한 감은사터 동탑은 탑 전체를 지탱하는 아랫돌인 기단부 내부의 잡석들이 무게를 견디지 못해 함몰하면서 탑 곳곳에 균열이 발생, 자칫 탑 자체가 기울어질 위기에 처해있고, 95년 역시 해체ㆍ복원을 거친 나원리 5층석탑 역시 최근 기단부와 그 위를 덮는 갑석에 1~2㎝ 정도의 틈이 생기면서 붕괴 위험에 직면했다.

당시 두 탑의 보수작업을 같은 업체가 맡았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공사를 발주한 관리당국의 허술한 행정은 물론, 담합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이 이 지경일진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됐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종묘정전(국보 227호)의 사례는 보수ㆍ복원 공사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진행 중이던 보수공사가 흰개미에 공격 당한 목재 기둥을 교체하는 작업이었지만 철저한 방역ㆍ방제 처리를 무시한 채 일회성 훈증작업만 거친 육송(陸松)을 사용해 수년 내 같은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측은 "훈증처리로 충분하다"며 공사를 강행, 종묘정전 보수공사를 지난해말 마무리했다. 그러나 우려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당시 문제를 제기했던 정병국(鄭柄國ㆍ한나라당) 의원은 "세계적 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에 대한 보수공사가 이정도 수준이라면 다른 문화재에 대한 대접은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터무니 없는 날림공사까지▼

전남 화순군 운주사의 석탑과 석불은 전형적인 '날림' 보수의 피해자이다. 등을 맞댄 특이한 형태로 희귀성을 인정받는 석불감쌍배불좌상(보물 797호)의 경우 팔작지붕과 감실의 양쪽 벽 파손으로 지난 95~96년 당시 문화재관리국이 보수했다.

그러나 재질이 다른 석재와 철근조각으로 균형을 잡는 등 상식 이하의 보수를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웅전 뒤편의 원형다층석탑(보물 798호)도 기울어진 부분에 철 조각을 끼워넣어 철마다 녹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운주사 관계자는 "석조 문화재에 왜 철조각을 끼워넣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각종 불상에 대한 훼손 사례는 터무니 없을 정도이다. 지난 99년 '국가지정문화재 보호 및 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 1965년 보물지정 당시 철조불상이던 보물 422호 남원 선원사 철조여래좌상은 금동불상으로 '변신'했고 본래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모으고 있던 한천사 철조여래좌상(보물 667호)의 양손은 현재 곧게 펴진 채 각각 하늘과 무릎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문화재를 현대 건축물로 개악▼

이들 보물에 대해선 당시 원형복원 지시가 내려졌으나 해당 지자체의 예산부족을 이유로 아직까지 진전이 없는 상태다.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이태영(李泰寧) 명예회장은 "현재 국내 문화재 관리 시스템은 정책부재, 인력부족 등이 혼재된 총체적 난국"이라며 "선조의 혼(魂)이 살아 숨쉬는 생명체와 같은 문화유산을 섣불리 건드려 평범한 현대 건축물만 양산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김경철기자 kckim@hk.co.kr

김정호기자 azure@hk.co.kr

김용식기자 jaw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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