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대결 국면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미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 충돌의 책임에 대한 법적 공방이 뜨거워지고 있다. 양국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상반된 논리를 내세우고 있고, 학계에서도 명확한 국제법 규정이 없어 해석을 둘러싼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쟁점은 미국 정찰기의 중국 영공 침범 여부와 충돌 책임, 정찰기가 치외법권 대상인지와 중국측의 정찰기 조사 적법성 등이다.
먼저 정찰기 EP-3의 중국 영공 침범 여부에 대해 미국 정부는 중국의 영공인 하이난(海南)섬 12마일(19.3㎞)을 벗어난 60마일(96.5㎞)지점에서 사건이 발생했으므로 합법적인 정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이 점은 인정하지만, 해양법에 규정된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따른 200마일(321㎞)의 영토개념을 언급하면서 영공 침범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더욱이 EP-3기가 허가없이 비상착륙한 만큼 영공침범이 확실하다는 게 중국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중국의 EEZ 영토 개념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EEZ는 해양법상 경제적인 개념이지 군사적으로 적용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지난해 8월 중국 군함이 일본의 EEZ 내에서 활동하다 일본과 외교 마찰을 빚기도 했다.
충돌 책임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은 "속도가 빠른 비행기가 늦은 항공기에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는 국제민간항공법 규정을 들어 중국 전투기의 잘못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중국 정부는 미국 정찰기가 갑작스럽게 중국 전투기쪽으로 방향을 틀어 사고가 발생했으며, EP-3기의 앞쪽이 파손된 것이 그 증거라고 맞서고 있다.
EP-3기의 치외법권과 조사의 적법성 문제는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미국 정부는 정찰기가 비상 착륙했고, 기국주의 원칙에 따라 미 정찰기가 치외법권 공간이므로 즉각 기체를 반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앤서니 클라크 어렌드 조지타운대 법학과 교수는 1944년 국제민간항공기구 회의와 해양조약법을 들어 "'불가항력(force majeure)' 상황에서는 비상착륙할 수 있으며 군용기도 마찬가지"라며 치외법권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은 허락없이 EP-3기가 비상착륙, 중국 영토를 침범했기 때문에 당연히 조사할 권리가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영국의 국제법 전문가인 새뮤엘 워즈워드는 "항공기가 중국 영공을 침범했다면 중국은 당연히 착륙시켜 조사할 권리가 있다"면서 "첩보활동은 국제법에서 보호 받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양측의 주장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EP-3기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갖고 있지만 냉전시대의 전력 때문에 협상에서 이를 주장할 명분이 빈약하다고 4일 보도했다.
미국은 1976년 소련의 조종사가 일본으로 망명하며 몰고온 미그25기를 해체ㆍ조사한 뒤 돌려주었고, 1970년대 중반에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태평양에 침몰한 소련 잠수함의 인양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