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사원에게 존칭을 사용한다' '고정된 성역할을 강조하지 않는다'..제주의 주류업체 한라산 사옥에는 사무실마다 이 같은 내용의 '10계명'이 걸려 있다. 성희롱을 막기 위한 상황별 매너를 상세하게 안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10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사내에서 강력하게 처벌된다. 경미한 사안이라도 교육과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최근 몇 년 사이 성희롱 문제만큼 각 기업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분야도 없다. 1999년 남녀고용평등법에 처벌규정이 신설된 후에는 성희롱 예방을 위한 각종 제도를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이에 따라 회식이나 야유회 등 직장문화 전반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남성 직장인들이 '내 행동이 성희롱은 아닌가' '이 여직원에게 회식참여를 강요는 것이 문제는 아닌가'라는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직장문화가 바뀌었다"는 게 1993년 우조교 성추행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박원순(朴元淳) 참여연대 사무처장의 설명이다.
한라산의 '성희롱방지 10계명'과 같은 성희롱 예방지침은 1995년 아시아나항공이 처음 제정한 이후 대기업의 70%가 채택했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연 1회 이상만 실시하면 되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1년에 10회 이상 시행하는 회사도 셀 수 없을 정도다.
전담기구를 두는 회사도 많다. 전남 보성군 아산재단 보성병원은 여성고충처리위원회를 구성, 성희롱 상담과 추방캠페인을 맡도록 했다. 위원 4명 가운데 2명은 여성으로 선임하고 있다. 인천의 정보기술(IT)업체 나케아는 아예 성희롱 문제만을 전담하는 사원을 두고 있다.
서울의 인쇄업체 계석물산은 사장이 밤의 회식을 전면금지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성희롱의 위험을 줄일 뿐 아니라 집에 일찍 돌아가야 하는 주부사원들을 배려한 조치다. 이 회사 주부사원 양해숙(30) 대리는 "회식이 오찬 또는 조찬으로 열리면서 밤늦게까지 억지로 회식자리를 지키느라 아이들 저녁을 못짓는 일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성희롱 문제가 발생한 뒤 우리 기업들의 대응은 아직도 미온적이다.
96년 미쓰비시(三菱) 미국현지공장에서 여직원 300여명이 성희롱 문제를 제기했을 때 회사측은 책임을 인정하고 3,400만달러(한화 350억여원)를 배상했다. 그러나 지난해 발생한 롯데호텔 성희롱 사건에서 사측은 노동부가 가해자로 확인된 32명의 징계를 요 구할 때까지 뒷짐만 지고 있었다.
김태홍(金泰洪)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은 "성희롱 위반자에 대한 사내 처벌규정을 마련하는 등 기업들이 사건 발생시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후원:근로복지공단ㆍ한국산업안전공단
특별취재반=이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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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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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녹용기자1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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