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선희는 노래를 잘한다. 무대가 클수록 목소리도 쩌렁쩌렁 울린다. 작은 몸에서 나오는, 흐트러지지 않은 목소리는 분명 타고난 것이다.그러나 무조건 좋은 게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선희의 목소리도 그렇다. 엄청난 폭발력과 카리스마를 인정 받았지만, 폭발력을 조절하는 '미세한 밸브' 에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모든 것을 바꾼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했다고도 할 수는 없다. 강한 노래 속에 숨어있던 부드러운 서정을 더욱 부각시켰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이선희의 진짜 매력은 'J에게' 나 '아름다운 강산' 보다는 '겨울 애상' 같은 발라드에 숨어있었다.
'남은 사람은 그래도 살 수 있다는 그 말/ 그 말이 더욱 아프게 하네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삶의 의욕마저 잃은 여인의 이야기는 그를 3년 동안 보아온 매니저가 작사를 하고, 이선희가 곡을 붙인 '이별 소곡'(권진영 작사ㆍ이선희 작곡). 대학 1년에 데뷔, 10여년간 탄탄대로를 달리다 사랑의 아픔 등 시련을 겪은 자신의 삶처럼 느껴지는 곡이다.
그래서일까. 단순해서 더욱 슬프고 절절하게 느껴지는 마이너 발라드가 남기는 잔상은 매우 진하다.
팬클럽 '홍당무' 사이에서는 타이틀 곡을 놓고 일대 논쟁이 붙었다. 발라드 '이별 소곡' 과 박진영이 작사ㆍ작곡을 맡은 미드템포의 경쾌한 소울 '살아가다 보면' 이 경합했다.
'살아가다 보면' 은 미국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를 패러디한 내용으로 배우 엄앵란 김원희 등 화려한 캐스팅이 강점이다. '일어나 일어나' 하는 대목에서는 '캠페인성 노래' 이미지가 풍긴다.
그래서 고민했다. "이번에야 말로 느낌 있는 노래로 호소하고 싶은데." 결국 애절한 발라드 '이별 소곡' 을 타이틀로 삼았다.
음반마다 "공을 많이 들였다" 는 것은 어느 가수, 어느 앨범에서나 강조되지만 이선희 역시 이 부분에서 할 말이 많다.
다른 가수에 곡을 주는 것이 매우 까다로운 박진영은 물론 김종서에게서 경쾌한 록발라드 '아마'를 받았다.
'이 노래를 빌려서' '고백'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죠' 등 5곡을 인기작곡가 유영석이 곡을 만들고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유영석도 자기 스타일을 많이 바꾸었다.
피아노를 즐겨 썼던 유영석은 이선희를 위해 현 위주의 화려한 오케스트라 반주를 썼고, 이선희는 '지르지 않는' 창법으로 화답했다.
새 음반 '마이 라이프'는 'J에게' '알고 싶어요' 등 히트곡 16곡이 담긴 베스트 음반과 함께 2CD로 발매됐다.
"음반을 발매한 지 5일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대형 음반 매장 판매 순위가 상위권에 올라 흥분된다. 데뷔한 지 16년, 벌써 12번째 음반인데, 아직도 그런 것 때문에 설렌다.
가수라는 게, 살아가는 게 이런 것인가 보다." 그에게 올 봄은 다른 봄과 다르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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