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문학기행'에 이어 '고전기행'을 떠난다. 오늘 고전을 다시 펼치며 그 산실(産室)과 발자취를 돌아봄은,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선조들의 지혜와 웅지가 더욱 애틋해지기 때문이다.현란한 영상문화의 범람 속에 조상의 정신과 옛 글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고, 고전이 현대인에게 주는 가르침을 되새기고자 한다.
전국을 떠돌던 일봉(一峰) 스님이 강원 삼척시 미로면 두타산 천은사(天恩寺) 터를 찾은 것은 1972년 6월 20일이었다.
신라 흥덕왕 4년(829년)에 지었다는 내력만 전해져 올 뿐 한국전쟁으로 터만 남았던 그 곳. 스님은 그 곳에 지금의 천은사를 중건했다.
마을 입구 '두타산천은사기실비(紀實碑)'에 새겨진 글이 불사(佛事)의 계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學士李承休退隱海上卜築精舍于寺內看讀大藏經(학사이승휴퇴은해상복축정사우사내 간독대장경ㆍ이승휴가 은퇴해 바다가 보이는 절에 집을 짓고 대장경을 읽다)'.
중국과 고려의 역사를 읊은 대서사시 '제왕운기(帝王韻紀)'는 이 곳에서 탄생했다.
고려 고종 때 밀직부사ㆍ감찰대부 등을 지낸 이승휴(李承休ㆍ1224~1301)는 64세 때인 1287년 천은사에 용안당을 짓고 '제왕운기'를 썼다.
반고부터 원까지 중국의 역사와, 단군부터 고려 충렬왕까지 우리나라 역사를 상ㆍ하 2권에 7언ㆍ5언 고시, 3,620자로 압축한 대서사시이다.
'처음에 어느 누가 나라를 열었던고/ 석제(釋帝)의 손자로 이름은 단군일세/ 요임금과 같은 무진년에 나라 세워/ 순임금 시대 지나 하(夏) 나라까지 왕위에 계셨도다.'(전조선기ㆍ단군 부분)
'궁예의 조정에 벼슬하여/ 태조께서 원수(元帥)로 제수 받았네/ 이 때에 네 공신이 도탄민생 탄식했다/./ 무인년 유월 보름에/ 태조 거소로 나아가서/ 임금으로 추대했다/ 가뭄에 비구름 바라듯/ 온 세상 기쁨이라/ 동정서벌 18년에/ 삼한은 통일되었네.'(역대기ㆍ고려 태조 왕건 부분)
'제왕운기'연구가인 김경수 중앙대 국문학과 교수와 함께 찾은 천은사는 고전의 산실답게 그윽한 느낌을 주는데, 세태를 따라 개ㆍ보수 작업도 한창이다.
이승휴가 용계(龍溪)라고 부른 계곡의 물은 초봄을 가르며 흐르고, 일봉 스님이 거처하는 용안당은 이승휴가 조성한 정원 보광정(?光亭)을 내려다 보고 있다.
이승휴는 이 곳에서 원 간섭기에서 싹튼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단군부터 도도히 내려온 우리나라 역사를 중국과 대등하게 노래한 것이다.
발해를 최초로 우리 역사 속에 편입시킨 것도, 동부여 북부여 비류국 예맥 남옥저 등을 모두 단군의 후손으로 단정한 것도 '제왕운기'였다.
'삼국유사'와 함께 단군 조선의 기록을 남긴 저서임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것도 7언ㆍ5언고시라는 엄격한 문학적 틀 속에서 완성했다. 육당 최남선이 이 책을 '예림(藝林)의 일기(一奇)'라 한 것도 이유가 있다.
'고구려 옛 장수 대조영이/ 태백산 남녘 성에 씩씩하게 근거 삼아/ 주나라 측천무후 원년 갑신 해에/ 개국하여 이름 지어 발해로 일컬었다.
'(발해기) '어느 것이 가장 큰 나라던고/ 맨 먼저 부여와 비류국을 일컫고/ 다음으로 신라와 고구려가 있으며/ 남북의 옥저와 예맥이 다음이네/ 이들의 임금은 누구의 후손인고/ 대대로 이은 계통 단군에서 전승됐네.'(열국기)
마침 TV 사극 '태조 왕건'이 인기를 얻고 있는 때라, 이승휴는 궁예를 어떻게 묘사했는지 궁금하다. '양나라 정명 4년 무인에 이르러서/ 등극한 지 28년 세월 흘렀네/ 그 사이 포악방자한 것 괴이치 말라/ 우리 태조 위해 만백성을 몰아주었네/.
/ 궁예는 날로 포악해지니/ 민심은 물이 끓듯 어지러웠네.'(후고구려기와 역대기)
낙엽만 무성한 연못 지락당(知樂塘)을 바라보던 김 교수가 불쑥 한 마디 한다. 1992년 가을 이 곳에서 이승휴가 만든 것으로 보이는 맷돌과 돌 항아리를 발견한 것도 그다.
"이승휴는 과연 천재입니다. 춘추필법의 정신으로 역사를 시에 담는 것이 어디 범인이 할 수 있는 일입니까.
우리나라 중세 문학사는 결국 이규보의 '동명왕편'에서 시작돼 '제왕운기'를 거쳐 '용비어천가'로 완성됩니다. 글 하나하나는 물론 이승휴가 직접 단 각주 역시 민족문학의 보고입니다."
천은사 경내 곳곳을 안내하던 일봉 스님이 총평을 한다. 천은사를 중건하면서 '제왕운기'를 수없이 읽었던 스님이다.
"과거에서 선한 정치, 악한 정치를 들춰내 현재의 귀감으로 삼으려 한 것이 '제왕운기'입니다. 열린 세계관으로 중국과 우리 나라 역사를 바라본 이 책에서 요즘 정치인들도 교훈을 얻어 실천에 옮겼으면 좋겠습니다.
깨달음보다 중요한 게 보린(保隣), 곧 이웃 사랑입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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