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드라마 '태조 왕건'에 나오는 궁예나 견훤, 왕건은 성이 궁, 견,왕씨인가요.우리나라에서 성(姓)이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이형서ㆍ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 우리나라에서 성씨는 고대 국가 형성기부터 사용됐다고 합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의하면 당시 고구려에는 국호와 관련한 고(高)씨, 백제에는 부여 계통인 시조 온조의 혈통을 딴 부여(扶餘)씨, 신라에는 박(朴) 석(石) 김(金)의 왕족 성씨와 6성(李 崔 鄭 孫 薛 裵)이 사용됐습니다.
그러나 고대 국가 초기에는 중국의 한자문화가 수입되지 않아 씨족과 혈족을 구분하기 위한 명칭이었을 뿐 현재 같은 성씨의 형태를 띤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자식 성씨가 보급된 것은 삼국시대 말로 당시 성씨는 국왕을 중심으로 한 지배층이 정치적 편제를 이루는 한 수단이었는데 국왕이 특정 지역 지배 집단에게 성씨를 내리는 사성(賜姓)을 통해 보급됐지요.
따라서 왕실 귀족과 같은 최상층 집단이 성을 갖게 됐고 백성은 성 없이 이름만 썼습니다. 성씨의 수도 많지 않아 고구려에는 해(解) 예(禮) 송(宋) 목(穆), 백제는 사(沙) 연(燕) 왕(王) 고이(古爾) 흑치(黑齒), 신라는 박 석 김 이 최 정 등 각 10개 안팎이 사용됐습니다.
신라왕 아들 궁예는 김씨
고려시대에 오늘날의 성과 본관 체계의 원형이 마련됐습니다. 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王建)이 940년(재위 23년) 전국의 유력 토착호족에게 성씨를 부여하는 정책을 쓴 것입니다.
이에 따라 고려 초에 토착 성, 중국에서 도래한 외래성, 새롭게 만든 성씨가 합해져 많은 성씨가 생겼습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고려의 성씨는 약 250여개였습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TV드라마 '태조 왕건'의 배경이 고려 개국 이전이므로 왕실, 귀족이 아닌 경우 이름만 쓰는 경우도 많았을 것입니다.
신라 47대 헌안왕 또는 48대 경문왕의 아들로 알려진 궁예(弓裔)는 성이 김(金)씨이고 농민 출신 장군 아자개(阿慈介)의 아들인 견훤(甄萱)은 본성이 이(李)씨였으나 후에 황간 견(甄)씨의 시조가 됐답니다.
최근 행주 은(殷)씨 대종회는 궁예의 심복으로 등장하는 내군장군 은부가 은씨와는 상관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대사중에 은장군으로 불려 은씨라는 혼돈을 준다는데요.
한자도 다를 뿐 아니라 당시에는 성을 가진 사람이 극히 적었고 이름만 쓰는 사람이 더 많았다는 것이 정설이므로 행주 은씨 대종회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현재 우리나라 성씨는 274개(85년 현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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