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2000년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의미있는 해였겠지만 나에게도 역시 의미있는 한 해였다.장성한 아들과 딸을 지난해에 한꺼번에 결혼을 시켰기 때문이다. 그것도 휴전선보다 더 견고하다는 영호남 갈등의 경계선을 넘어 아들 딸의혼인을 성사시켰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고향이 경주인 사위와 1월에 혼인을 했고, 아들녀석은 대구출신의 며느리와 9월에 결혼을 한 것이다.
아들과 딸은 오랫동안 대구처녀와 경주 총각과 연애를 했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의 연애에 '지역감정'이라는 케케묵은 정서는 아무런 장애물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 하도 깊어 부모인 우리서도 결혼을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 승낙을 했다. 결혼식도 별 무리없이 진행됐다.
물론 지역적 정서나 관습, 음식의 기호 등이 차이로 의견이 부딪힐 때도 있었지만 그정도 의견 충돌은 어느 집안과 결혼을 하든 있는 사소한 것이었다.
나는 또 지난해 10월에는 영·호남 화가들끼리 영·호남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마련된 미술교류전에 참여했다.
부산 대구 울산 대전 전주 목포 등지의 작가들이 모여 각 지역을 돌며 순회전을 연 것이다. 영남의 여러 도시를 돌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예술가들에게서는 어떤 거리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처럼 사회 어느 부문에서나 보통사람들은 지역감정의 골을 느끼지 못한다. 지역 감정이 더욱 공고해 지고 지역감정을 생존의 수단으로 여기는 분야는 오직 정치이고 정치인들 뿐이다.
얼마전 개각이 있었고 어김없이 출신지를 놓고 지역편향적인 인사네, 지역안배네 하는 공방이 뒤를 이었다. 출신지가 아닌 자질로 인사의 정당성 여부를 따지는 정치풍토가 아쉽기만 하다.
정치인들의 이런 싸음에는 아랑곳없이 보통사람들의 정은 쉬이 지리산을 넘는다. 얼마전 경주 사시는 사돈어른은 커다란 문어를 여러 마리 싸서 보내셨다.
그 커다란 바구니에 나는 무엇을 채워 보낼까 하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 올해도 나는 울산과 창원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그곳에 경주와 대구에 사시는 사돈을 초대하고 싶다.
정다운 서양화가 전남 목포시 용당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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