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병이 깊어진 여자가 바닷가 절벽에서 몸을 던진다. 한 마리 나비처럼 영원으로 날아간 그녀의 죽음은 자살하려고 땅끝 마을 절을 찾았던 남자로 하여금 모든 집착이 부질없다는 깨달음과 더불어 참된 자유에 눈뜨게 한다.김태수 작, 우현주 연출로 극단 떼아트르 노리가 공연 중인 '나비는 천년을 꿈꾼다'는 인연과 운명, 번뇌와 해탈에 관한 불교적 성찰의 연극이다.
2월의 연극 '꽃마차는 달려간다'(극단 로뎀)를 비롯해 그동안 구수하고 질펀한 대사를 즐겼던 김태수가 이 작품에서는 말을 아끼는 절제로 수묵화처럼 담담하게 가라앉았다. 그의 표현대로 '여백이 많은 작품'이다. 생각할 틈을 주는, 느림과 쉼표의 연극이기도 하다.
관념적인 작품이지만, 지루하거나 어렵다는 느낌은 없다. 김태수 특유의 탄탄한 극작술과 우현주의 세밀한 연출, 배우들의 호연 덕분이다.
무대장치라곤 배경으로 늘어뜨린 흰 광목천과 아무 그림도 없는 흰 병풍, 간단한 탁자 뿐이지만,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관객의 머리 속에선 상상의 필름이 돌아간다.
연출은 소리와 빛의 이미지로, 주인공의 내면을 표현하는 검은 옷 네 여자의 말 없는 몸짓으로 무대에 환상을 불어넣으면서 과거와 현재를 이음매 없이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은행나무 침대' '쉬리' 등의 영화음악 작곡가로 잘 알려진 이동준의 음악이 큰 몫을 한다.
'옴 마니 밧메훔'의 진언, 법고 소리를 닮은 북의 울림, 정주(놋주발)의 신비스런 음향 등이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다.
배우 박지일이 번뇌하는 남자 주인공을 열연하고 있다. 자살하는 여인 역 차유경은 섬세하고 차분한 연기로 고요한 슬픔을 드러내고, 그와 인연의 끈으로 묶인 해운스님 역 전국환은 묵직한 연기로 한 편의 화두 같은 이 연극을 단단하게 지탱한다.
여기에 정 많고 다소 경망스런 벌교댁 역 김태정의 천연덕스런 연기가 감초처럼 끼어들어 좋은 연기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5월 6일까지 대학로 소극장. (02)3673-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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