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3일 국회 대표연설은 정치연설보다는 정책연설에 가까웠다. 이 총재 자신 정치쟁점에 관한 언급을 최대한 피하고 싶어한데다, 연설문 작성과 독회에 참여했던 대다수 당직자들도 시퍼런 독기보다는 따끔한 비판이 지치고 울분에 찬 국민들에게 훨씬 더 효과적으로 먹힐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이 총재는 연설의 60% 이상을 의약분업과 건강보험 재정파탄, 무너진 공교육, 전세ㆍ월세대란과 가계부채, 피폐한 지방경제, 현대사태 등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현안들에 할애했다.
반면, 개헌론과 정계개편, 3당연합 등 정치 문제들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개각에 관해서도 최대한 짤막하게 짚고 넘어갔다.
이 총재는 연설 뒤 기자들과 가진 점심 간담회에서 "정치보다는 민생과 경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면서 "당내에선 정치에 관한 내용이 너무 적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지금 이 국면에 개헌론이니 정계개편이니 떠들면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연설문 작성에 관여했던 한 핵심 당직자는 "연설문을 자세히 뜯어보면, 김대중 대통령을 직접 건 대목이 몇 군데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싸움닭 이미지를 희석해야 할 필요성도 있었겠지만, 대통령과 그만 싸우고 싶다는 속 생각이 은연중 반영된 결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특히 이번 연설을 통해 건설적 대안제시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감에 쫓겼다는 후문이다.
이 와중에 정책관련 당직자들이 꽤 채근을 당했는데, 그럼에도 야당으로서 뾰족한 수가 없다는 현실적 한계와, 무책임한 발언은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 등이 겹쳐 결국 두루뭉수리에 그쳤다. '국민우선 정치'에 관한 대목도 꽤 공을 들였지만 개념적 설명 수준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다.
홍희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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