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 짓는 중요한 특질 중 하나다.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무엇보다도 언어를 사용하는 호모 로쿠엔스다.그러나 말하는 동물로서의 사람이 누구나 언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적어도 하나의 모국어가 있다. 그래서 그는 적어도 하나의 자연언어를 잘 안다.
하지만 전문적인 언어학자를 제외하면 그 자연언어에 '대해서'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가 어떤 자연언어(들)에 '대해서'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그 지식은 편견에 기초한 오해이기 십상이다.
뉴질랜드 빅토리아대 언어학과 교수 로리 바우어와 스위스 로잔대 영어과 교수 피터 트러길이 함께 편집한 '영어에 관한 21가지 오해'(김종복 장영준 옮김ㆍ한신문화사)는 언어(들)에 대한 그런 편견이나 오해를 교정하고자 하는 언어학자 스물 한 사람의 글 모음이다.
한국어판 제목에 '영어'라는 말이 들어있듯이 영어의 예가 많이 거론되기는 하지만, 원저의 제목이 그냥 '언어 신화'인데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자연언어 일반을 둘러싼 신화를 벗겨내려고 한다.
자연언어를 둘러싼 신화들은 아주 많다. 예컨대 프랑스어는 세상에서 가장 논리적인 언어다, 여자는 남자보다 더 말이 많다.
이탈리아어는 아름답고 독일어는 투박하다, 영어는 일본어보다 배우기 어렵다, 매스미디어나 미국인이 영어를 망치고 있다.
사투리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무식하다, 흑인 어린이는 영어를 못 한다, 영어는 문명어이고 마오리어는 원시어다,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 사용자는 영어 사용자보다 말을 빨리 한다 같은 것들이 그 신화의 목록에 포함돼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언어(들)를 둘러싼 이런 담론들이 민족주의나 계급적ㆍ인종적 편견 또는 그 밖의 여러 주관적 경험에 기초해 있는 신화일 뿐, 과학적으로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독자가 이 책을 읽고 깨닫는 것은 자연언어 사이에는, 그리고 자연언어 내부에는 사람들이 무심코 가정하는 어떤 위계나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프랑스어는 그 자체로 논리적인 언어가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 언어를 논리적으로 또는 비논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 우리가 표준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사회의 힘센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언일 뿐이라는 것.
마오리어에도 영어만큼 표현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 바른 언어 사용법에 대한 판관(判官)은 문법학자들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언중(言衆)이라는 것을 저자들은 보여준다.
그것은 언어 순수주의자나 언어 제국주의자에게는 못 마땅한 결론이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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