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에 살랑살랑 춘풍이 불고 있다. 아직은 가볍게 나뭇가지들을 흔들 정도이지만 밑바닥에 흐르는 기운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 그 세기나 굵기로 보아 머지 않아 세찬 폭풍으로 발전할 듯하다.이번엔 '앙팡 테리블'원성진(16) 3단과 '숨은 진주'안영길(21) 4단이 선봉에 섰다.
한국기원이 2일 발표한 1ㆍ4분기 전적집계에 따르면 두 신예기사는 승률 순위에서 90%(9승 1패)와 77.78%(7승 2패)로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바둑계의 이목이 온통 '불패소년' 이세돌 3단에게 쏠리고 있는 사이 또 다른 반란의 역풍이 조용히 일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해 17연승(99년 12월 7일~2000년 3월 10일)으로 이세돌(32연승)에 이어 연승 랭킹 2위에 올랐고, 제12기 기성전, 제5회 LG배세계기왕전, 제5회 삼성화재배, 제6기 천원전 등 4개 기전의 본선에 잇따라 진출했던 원 3단은 해가 바뀌었어도 굳건히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다.
주요 기전의 축소 및 폐지에 따른 빈국(貧局) 속에서도 3월 28일까지 7전 전승을 달려왔고 신예기사 등용문인 '바둑TV배 신예연승최강전'본선에서는 '괴동'목진석 5단과 조한승 4단을 연달아 꺾으며 결선 토너먼트 첫 진출자가 되었다. 당돌하게도 "올해 목표는 한 개 이상의 세계 타이틀 우승"이라고 말하는 이 겁 없는 10대의 행마가 거침없어 보인다.
프로 입문 4년이 넘도록 그늘에 가려져 왔던 '무명 기사'안영길의 활약은 더욱 눈부시다.2월 2일 제35기 왕위전 본선리그 첫 대국에서 지난 해 바둑계 MVP에 빛나는 이세돌을 134수 만에 백 불계로 제압, 파란을 일으키더니 두 번째 대국(3월 12일)에선 '야생마'서봉수 9단마저 111수 만에 흑 불계로 꺾었다.
쟁쟁한 강호들을 상대로 낚아 올린 2연승으로 그는 단숨에 리그 단독선두로 나서며 가장 유력한 도전자 후보로 급부상했다. 더욱이 현재 국내 최대기전인 제6기 LG정유배 프로기전과 제20기 KBS바둑왕전 본선무대에도 올라 있는 상태라 '무명 돌풍'이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노장 중에는 '바둑황제' 조훈현의 부활이 돋보인다. 지난 해 국수위를 상실하며 사실상 무관으로 전락했던 그는 올들어 전성기 시절 못지않은 속력행마를 과시하며 13승 5패로 다승 1위, 승률(72.22%) 3위에 당당히 올라섰다.
30%대의 승률을 간신히 유지해 온 이창호 9단과도 8번 만나 4승4패의 백중세를 보이고 있고, 제44기 국수전 도전기(5번기) 리턴매치에서는 챔피언인 '철녀'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에게 일찌감치 2연승을 거두며 타이틀 탈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밖에 기준 대국수(9국)에 못 미쳐 성적 집계에선 빠졌지만 새 얼굴들의 약진이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기사가 지난 해 말 입단한 열다섯살 '새내기'이재웅 초단. 프로 원년에 벌써 5승 2패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그는 3월 16일 KBS 본관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제20기 KBS바둑왕전 본선13국에서 여전사 박지은 3단에게 194수 만에 백 불계승, 승자조 8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바둑TV배 신예연승최강전에서도 당당히 예선관문을 통과해 이세돌ㆍ원성진ㆍ목진석 등과의 일전을 앞두고 있다.
지난 해 입단한 대만 출신의 천스위웬(陳時淵) 초단 역시 올들어 5전 전승을 달리며 바둑TV배 본선, 국수전 2차예선에 올라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토종 여류기사 중에는 이영신 2단이 6승1패로 박지은의 기록(5승7패)을 월등히 앞서며 '다크호스'로 부상중이다.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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