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의 해외매각과 외자유치가 겉돌면서 눈덩이처럼 늘어난 빚은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잠복하고 있다.가격ㆍ조건에 매달리는 기업과 채권단의 편협한 태도와 협상력 부재 때문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고도 매각은 제자리 걸음을 했고, 막다른 골목에 처한 부실 기업들은 이제 생사(生死)의 기로에 서있다. 협상의 고비마다 헐값매각과 국부유출 논란이 외자유치의 발목을 잡았다.
▦12조원을 쏟아 붓고도 주인 못 찾은 대우차
4년째 외자유치를 추진하고 있는 대우차는 원칙 없는 정부ㆍ채권단과 해외매각 반대를 외치는 강성 노조가 뒤엉켜 도리어 부실만 키우고 있다.
부도와 정리해고라는 희생을 치렀지만 이달 말로 기대했던 미국 GM과의 협상마저 암초에 부딪치면서 청산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마저 나오고 있다.
자본잠식 상태인 대우차의 총 부채는 19조원(지난해 결산 기준). 대우차의 해외매각이 또다시 실패할 경우 앞으로 채권단이 입게 될 직접적인 손실만 12조원에 이른다. 여기에 대우차 부도와 법정관리에 따른 해외 신인도 하락이나 부품협력업체들의 연쇄부도를 모두 합치면 경제적 손실은 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립대 손정훈(孫正勳ㆍ경영학) 교수는 "지금까지 많은 기회를 놓친 상태에서 국부유출시비가 논란이 되고 있고 독자생존 또는 공기업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금융권 자금으로 연명하는 냉엄한 현실과 세계적인 자동차 산업의 흐름을 감안하면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서는 인된다"고 말했다.
▦매각방식 혼란에 한 눈 파는 서울은행
서울은행은 6월말까지 매각되지 않으면 우리금융지주회사에 편입시키겠다는 정부의 '최후통첩'을 받아놓고 있는 상태다.
지금까지 '해외 매각''국내 매각' '독자 생존' '지주회사 편입' 등 정부 방침이 수시로 뒤바뀌면서 매각 작업은 번번이 좌절됐다.
지금까지 서울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세차례에 걸쳐 모두 5조6,000억원 가량. 이처럼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고도 해외 매각이 실패로 끝나 지주회사에 편입된다면 엄청난 국가적 손실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HSBC에 다소 기대에 못미치는 가격에라도 팔든지 아니면 일관되게 계속 매각을 추진했다면 이렇게 궁지에 내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지난해 4월부터 1,000만달러 이상을 주고 도이치은행으로부터 경영자문을 받은 것은 '낭비'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서울은행의 한 관계자는 "경영자문으로 도대체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가격에 집착하다 부실 떠안은 대한생명
대한생명도 너무 가격 조건에 집착하다 결국 더 큰 부실을 떠안게 된 사례로 꼽힌다. 98년 이후 3차례나 매각 작업에 나섰는데 번번이 실패하자 정부는 99년 7월 매각 전제조건으로 공적자금 투입 최소화와 외국 유명 보험회사 매각을 통한 선진보험 경영 도입을 내걸었다.
"도저히 양립하기 어려운 두가지 조건을 같이 내걸었으니 성공하기는 애초부터 힘들었다"는 것이 보험업계 관계자의 말. 입찰과정에서 정부가 은근히 기대했던 미 AIG그룹은 1조원 이하를 고집했고 정부는 막판까지 인수가격차를 좁히지 못해 결국 매각작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대한생명은 99년 9월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된 이후 2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조만간 1조5,000억원의 공적자금이 추가로 투입돼 지급여력비율 100%를 충족시킨 뒤 국제입찰에 다시 부쳐 국내외에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협상력 부재로 부실키운 한보철강
총부채 4조9,000억원의 한보철강은 부도처리된 지 4년이 지났지만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네이버스 컨소시엄에 4억8,000만달러(약 5,000억원)에 넘기는 매각협상이 불발로 끝난 이후 자산관리공사는 올해 9월까지 인수대상자를 찾아 매각절차를 끝내겠다는 입장이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자산관리공사측은 지난해 네이버스와의 매각협상 결렬이후 "매년 200억원 이상의 자본잉여가 가능하기 때문에 정상가동 하면서 적정가격을 제시하는 인수자를 물색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올 결산 결과 지난해 영업손실 372억원을 포함해 모두 3조원 이상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매각진전 어디까지 왔나
대우자동차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미국 GM이 이달 말까지 대우차 인수에 대한 공식 입장을 표명하지 않으면 독자생존 등 다른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루디 슐레이스 GM 아시아태평양 총괄사장은 "한국정부가 기대하는 것처럼 4월말까지 인수에 관한 공식 입장을 표명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
대우차 인수여부는 전적으로 구조조정에 대한 근로자들의 태도와 노사문제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GM은 당초 이달 초 열리는 이사회에서 대우차 인수에 관한 최종 결정을 내릴 방침이었으나 이를 유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은행의 경우 6월말까지 매각되지 않으면 정부 주도인 우리금융지주회사에 편입시키겠다는 정부의 '최후통첩'을 받아놓은 상태다.
강정원 행장이 2월 해외 로드쇼에 나간데 이어 4월 중순께는 몇몇 원매자들이 실사를 하기 위해 방한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행 측은 6월말까지는 지분 51% 이상을 매각하는 양해각서(MOU)를 교환한다는 목표. 이를 위해 3억달러의 해외주식예탁증서(GDR) 발행 계획도 하반기로 미뤄놓았다.
대한생명의 경우 2ㆍ4분기 중 1조5,000억원의 공적자금이 추가로 투입, 지급여력비율 100%를 충족시킨 뒤 국제입찰에 다시 부쳐 국내외에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당초 목표는 상반기중 매각이었으나 최근 연말로 시한을 연장했다.
한보철강 매각기획단은 헐값매각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일부 가동중인 A지구와 건설이 중단된 B지구를 분리해 매각키로 하고 9월말까지 인수대상자를 확정하기로 했다.
이밖에 정부가 미국 AIG컨소시엄과 협상을 진행중인 현대투신 외자유치는 빨라야 6월쯤 결론이 날 전망이다. 정부는 최근 현대투신의 정확한 부실 규모를 밝히기 위해 실사에 착수했으며 실사가 끝나는 이달 말께부터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AIG측은 현대투신과 증권, 투신운용 등 현대 계열 금융 3사를 일괄 인수하는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김정곤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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