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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정휴스님 '죽어서 시가되는 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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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정휴스님 '죽어서 시가되는 삼이 있습니다'

입력
2001.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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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들의 임종게(臨終偈)에는 그대로 해탈의 육성이 담겨 있다. 육신을 화장하지 않고 굶주린 산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한 수행자가 있는가 하면, 관을 선물받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는 선사도 있고, 스스로 불타는 장작더미 위로 올라가 소신(燒身)으로 공양한 스님도 있다.이들의 임종의 모습이 어떠하든 그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에는 공통적으로 집착을 버린 삶이 이룩한 무소유의 언어가 있다.

정휴(正休ㆍ57) 스님이 펴낸 '죽어서 시가 되는 삶이 있습니다'(우리출판사 발행)는 고승들의 열반송을 모은 것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일본의 역대 고승들의 임종게 72편을 싣고 정휴 스님은 거기에 자신의 감상을 시로 혹은 짧은 산문으로 덧붙였다.

'육체는 내 것이 아니요(四大非我有ㆍ사대비아유)/ 오온 또한 내 소유가 아니네(五蘊本來空ㆍ오온본래공) / 흰 칼이 목에 닿으니(以首臨白刃ㆍ이수임백인)

/ 오히려 봄바람 자른 것 같네(猶如斬春風ㆍ유여참춘풍)' 중국의 승조 선사는 임종게에서 죽음을 맞아 이승의 육체와 모든 인연을 봄바람 자르듯 잘라버리고 훌훌 자유로운 영혼으로 남을 수 있는 여유를 노래했다.

자신의 몸뚱아리마저 자신의 것이 아닌데 일생 동안 집착을 너무 오래 했다는 의미이다. 정휴 스님은 여기에 죽음은 단지 '밤새 머물고 있던 어둠이/ 떠나는 소리였고/ 별들이 빛을 거두어/ 하늘로 돌아가는 기척이있다'는 시를 붙였다.

우리 근대의 고승 경허(鏡虛) 스님은 '마음달이 뚜렷이 밝아서/ 그 빛이 만상을 삼켰네/ 빛과 경계 모두 없으면/ 다시 이 무슨 물건인가'라는 열반송을 남겼다.

수행으로 이뤄진 삶의 끝은 오히려 마음달(心月)이 밝은 상태이고, 빛과 그 경계마저 없는 신생의 지경이 된다.

정휴 스님은 이를 "별들이 빛을 거두어 가듯 인간도 죽음으로 자성(自性)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해주고 있다.

"누더기 한 벌 입고 임종이 다가서면 산으로 들어가 밤이면 별빛을 가슴에 묻고 초탈을 몸에 익혀 입적하여 훗날 율무꽃으로 피어나는가 하면, 도반끼리 입적하여 한 수행인은 별빛이 되고 한 스님은 소쩍새가 되어 서로 달빛과 새소리로 듣는 아름다운 만남도 있었다"며 정휴 스님은 "선사들의 입적 모습은 생멸이 없는 삶을 살고 간, 한 편의 시"라고 말했다.

정휴 스님은 지난해 선사들의 입적 과정에 얽힌 일화들을 소개한 '적멸의 즐거움'을 낸 데 이어 이번 열반시 선집을 펴내 다시 한번 불교사상의 정수와 그 풍부한 문학성을 보여줌으로써 선(禪)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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