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초동 골목의 한 건물. 재잘거리는 아이들 앞에서 피에로 복장의 50대 남자가 컵 두개와 받침 셋을 들고 무언극을 한다.컵과 받침을 짝지은 뒤 남은 받침 하나를 흔들어 보인다. 이어 "선생님이 무엇을 했을까요"라고 질문하고는 아이들을 일일이 불러내 답을 듣는다. 받침이 하나 남는다는 사실을 통해 셋이 둘보다 더 크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이 남자는 서울교대 수학교육과의 배종수(裵鍾洙ㆍ54)교수. 5, 6차 수학교과서를 만드는 데 참여했고 제7차 수학교과서는 편찬위원장을 맡은 수학교육 전문가다.
하지만 그는 매주 월, 수, 금요일 오후면 서초동 이 건물에서 초, 중학생 90여명에게 무료로 수학을 가르친다. "수학은 논리력과 창의력을 기르는데 그만이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수학이라면 지긋지긋해 합니다.
가르치는 방법이 잘못됐기 때문입니다."잘못은 원리를 깨닫게 하기보다는 기계적인 암기식 문제풀이만 시킨다는 것. 고 3이 되면 수학을 제대로 하는 학생이 20% 밖에 안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배교수는 말한다.
그는 서울교대 졸업 후 1969년부터 7년간 교사를 하면서 교육방법의 잘못을 깨달았다. 84년 교수가 된 뒤 줄곧 대학 제자들에게 변화를 촉구했지만 변화가 없었다. 결국 직접 나서는 수 밖에 없었다.
지난해 1학기부터 그가 다니는 교회에서 초등학교 1, 2학년생 40여명에게 수학을 가르치다가 올해는 출판사를 하는 제자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장소로 옮기고 초등학교 1~4학년, 중학교 1학년생으로 대상을 넓혔다. 피에로 옷은 산만한 아이들의 시선을 잡아두기 위해서라고.
"정답이 뭐냐고 묻지 않습니다. 답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지요. 애들마다 답이 다 달라요. 대화를 통해 원리를 익히도록 합니다."그가 즐겨쓰는 방법은 수학을 몸으로 체득토록 하는 것.
나무 막대의 높이를 점점 줄여가면서 아이들이 그 아래를 통과하게 만들어 아이들의 키 순서를 정하기도 한다. 이런 간단한 방법을 통해 아이들은 비교하는 법을 즐겁게 배울 수 있다고. 사다리꼴의 넓이 내기도 공식에 대입하지 않고 직사각형, 삼각형이나 평행사변형의 넓이를 활용하라고 가르친다.생활 속에서 수학을 익히도록 강의에 바둑알, 사탕, 컵, 색종이 등이 동원된다.
강의에는 부모도 동참토록 한다. 부모 역시 문제풀이식 수학을 익혔기 때문에 함께 배워야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교사들과 함께 '생명을 살리는 수학교육 모임'도 만들 계획이다. 지금의 수학은 깊은 병에 걸려있기 때문에 '생명을 살리는'을 집어 넣었다.
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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