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부터 유창혁 서봉수 등 국내 정상급 기사 9명이 중국 프로 리그에서 활동하게 된다. 국내 바둑계에서는 그동안 다소 침체 상태에 빠졌던 바둑계의 숨통을 터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 바둑이 열도 점령에 이어 드디어 대륙 공략에 나섰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이도 있다.한데 국내 기사들의 중국 진출을 마냥 즐거워 하기만 해도 되는 것일까. 벌써 바둑계 일각에서는 국내 바둑계의 공동(空洞)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실 한국 정상급 기사들이 중국 바둑계에 용병으로 활용된다는 것이 그리 기분 좋은 일 만은 아니다.
그만큼 한국 기사들의 실력이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도 되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 수 아래로 치부되었던 중국 바둑계가 스스로 자부하듯 '세계 바둑계 신조류의 중심'으로 우뚝 섰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더욱이 한물간 선수들이 아니라 쟁쟁한 정상급 기사들이 앞을 다퉈 중국행을 택했다는 것은 한국 바둑계가 이들을 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메말랐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국내 기사들의 중국 진출이 계속 확대될 경우 국내 바둑계가 크게 영향받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특히 정상급 기사들이 대거 국내 기전에 불참할 경우 필연적으로 국내 기전의 위축을 초래할 것이다.
"국내 기전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가벼운 아르바이트인데 뭘 그리 걱정하나"고 할 지 모르지만 갑조의 경우 1년 내내 중국 전역을 순회하며 대국을 해야 하므로 불가피하게 국내 기전 일부를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일부 기사들은 공공연히 "국내 기전은 상금이 너무 적어서 전력을 다하기 싫다"고 말하고 있다. 앞으로 피차 조건만 맞는다면 국내 기전을 완전히 포기하고 완전히 중국 리그로 이적하는 경우가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최근 10년간은 세계 대회가 잇달아 창설되는 등 한국은 세계 바둑의 중심이었다. 특히 중국 기사들은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는 자체가 큰 행운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상황이 역전됐다. 실제로 이번 중국 진출 기사들이 받는 보수는 중국 선수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고 보면 중국의 한 정상급 기사가 얼마 전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이 개최하는 국제 기전 불참을 선언한 것도 단순히 '괴팍한 성격' 때문이 아니라 중국 내에서의 벌이 만으로 아쉬울 게 없다는 실질적인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난 10년간 한국 바둑계가 현실에 안주하는 동안 엄청나게 성장한 중국 바둑계를 바라 보며 부러움과 함께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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