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전담부처를 제외한 일반부처로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여성차관이 탄생했다.'남자보다 더 남자답다'는 것이 트레이드 마크인 김송자(金松子ㆍ61) 신임 노동부 차관. 그는 1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오랜만에 친정으로 돌아온 만큼 장관을 보필해 실업대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고는 말을 아꼈다.
그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없는 고비를 겪었으나 특유의 추진력과 끈질김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경북 칠곡 출신으로 포목상을 하는 부모 밑에서 곱게 자란 김 차관은 "감성이 풍부하고 무척 여렸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러나 지금 그는 폭탄주 몇 잔에는 끄떡없고 거친 농담도 잘 하며 담배도 피운다. 아랫사람들 사이에서는 '보스' 또는 '형님'으로 통한다.
그를 변하게 한 것은 공무원 생활이었다. 주사 시험에 합격한 뒤 69년 총무처에 처음 발령받았다. 그러나 그의 자리는 직급에 상관없이 주사보보다도 말석이었다.
"공무원 사회에서 여성이 이렇게 취급받는데 기업체에서는 어떻겠는가"라고 생각한 그는 여성근로자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당시 누구도 가려하지 않던 노동청 전출을 자원했다.
부녀소년과장 노동연수원장 노동보험국장 근로여성국장으로 승진할 때마다 우여곡절을 겪었다.
특히 여성에게 불리한 법 개정에 반대하다 인사권자의 눈 밖에 나 2급인데도 3급 직책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그는 산업상담원제 도입,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직장탁아소 건립 등 많은 일을 했다. 지난해 4월 고려대 행정대학원 교수로 가면서 자신의 삶의 철학을 '성공하려면 전략가가 되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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