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농부가 곡식의 싹이 좀처럼 자라지 않자 흙을 파고 그 뿌리를 살짝 뽑아 주었더니 이튿날 말라죽고 말았다'(맹자, 공손추장)는 알묘조장은 지금도 횡횡하고 있다.쉴 틈 없이 학원에 가서 때 이르게 미리 배워버린 학생은 학교에서 배울 것이 없다는 자만심만 갖는다. 수업중에 학원 숙제하고 밀린 잠이나 자는 이들 학생은 뿌리 뽑힌 싹과 같다.
정책과 교사를 탓하기 전에 먼저 학생을 그렇게 내모는 부모들을 꾸짖어야 한다. 휘어지는 것은 부모 허리가 아니라 학교와 과외를 오가는 학생의 인성이 아닐까.
교육은 교사와 학생이 만나는 수업과정에서 이루어진다. 학생의 능력과 관심사를 헤아려 정부는 작년부터 새 교과서를 내놓고 교실마다 정보기기도 공급하여 열린 마음으로 토론하는 학습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교사가 소외되면 이도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시류에 따른 구호식 교육이나 온갖 문제를 학교에 넘겨 교사를 체근하는 행정, 그리고 교수의 명예와 종신직은 보장하지만 교사 능력은 나이로 재는 이중잣대는 교사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맹목적 교육열의 안묘조장과 일부분을 전체 교사의 문제로 몰아가는 선동적인 정책, 엊그제 바꾼 정년을 환원시키려는 교육철학 빈곤도 교사소외에 한 몫을 하고 있다.
막대한 예산과 현란한 구호, 일방적 비판 또는 외국 교육에 대한 피상적 모방만으로는 교육의 본질을 추구할 수 없다.
이제는 교육을 교사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교사는 억지 예우나 더 많은 보수가 아니라 제자를 소신껏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바란다.
정부가 교사를 홀대하고, 제 자식을 맡긴 부모가 공경하지 않는데 어찌 소신껏 가르칠 수 있겠는가. 교육행정은 교사를 지원하는 서비스에 지나지 않으므로 수업연구를 저해하는 잡무나 지시통제를 줄이지 않고는 학교를 정상화시킬 수 없다.
부모는 점수와 석차보다 먼저 선생님 말씀 잘 들었는지 물어보자. 가정의 제왕인 이 시대 아이들을 공동체 규범에 맞도록 가르칠 사람은 선생님 뿐이다.
공부하지 않고 행실 나쁜 아이를 엄하게 꾸짖고 종아리를 때릴 수 있도록 선생님께 매라도 보내야 한다.
물론 교사도 무엇이 제자를 올바르게 가르치는 일인지 고뇌해야 한다. 붕괴된 것은 학교가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인데 지금 어디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하는가.
김정호ㆍ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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