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이 26시간에 걸친 무장대치 끝에 1일 새벽 당국에 체포됨으로써 그의 전범재판소 인도를 둘러싼 유고 정부와 서방측의 줄다리기는 최대 고비를 넘겼다.영국과 함께 밀로셰비치에 대해 강경입장을 고수해 온 미국이 "그를 체포하는 것 자체만으로 유고 정부의 '의지'를 인정할 수 있다" 고 한 최근의 다소 유화적 발언을 고려하면 밀로셰비치의 전범재판소 인도를 둘러싼 서방과 유고측의 담판은 앞으로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유고헌법은 자국민을 외국법정에 세우는 것을 것을 금지토록 하고 있으나 그 개정안이 의회에 비밀리에 상정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빠르면 이달 말 밀로셰비치의 전범인도를 위한 법적 장애물이 제거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새벽 3시께 전격적으로 이뤄진 밀로셰비치 자택에 대한 경찰 급습은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대통령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었다. 밀로셰비치의 전범인도를 조건으로 한 미국의 5,000만 달러에 달하는 원조 마감시한이 이날 자정으로 임박한데다, 조란 진지치 세르비아 총리를 비롯, 그의 사법처리를 요구하는 세르비아 공화국 내 개혁파의 목소리가 갈수록 거세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하루 앞선 30일 "국가에 1억 달러에 가까운 손실을 입혔다" 며 경찰이 밀로셰비치를 권력남용과 부패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을 때 밀로셰비치를 체포하기 위한 당국의 물리적 행동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앞으로 관심사는 세르비아 사회당을 비롯한 야당과 군부의 반응이다. 31일의 경찰급습 당시 현장을 경비하고 있던 육군 일부 병력이 경찰의 밀로셰비치 자택 진입을 방해하고 자동화기로 중무장한 밀로셰비치측 요원들에게 집 열쇠를 넘겨줘 결과적으로 체포작전이 실패한 것으로 진지치 총리는 주장하고 있다.
두산 미하일로비치 세르비아 내무장관도 밀로셰비치 자택 경비병력을 경찰로 교체하려던 시도가 군의 협조 거부로 무산된 점을 들어 "일부 군 세력이 밀로셰비치의 지시를 받고 있다" 고 군 일부의 조직적 '반란'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와 관련, 유고 유력 일간지 폴리티카는 이날 "네보즈사 파브코비치 육군 참모총장이 밀로셰비치의 체포를 막았다" 고 보도한 뒤 행위의 중대성에 비춰 참모총장보다 윗선에서 이 같은 지침이 하달됐을 것으로 추측했다.
밀로셰비치의 체포에도 불구, 그의 전범재판소 인도 여부에 대해 유고 당국은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밀로셰비치 체포가 미국과 유고 양측의 교감 아래 그의 전범재판소 인도를 위한 '수순밟기' 차원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유고 제재문제 주무 장관인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이 2일 중 결론을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제재해제에 관한 인증 보고서에서 미국측의 긍정적인 입장이 반영될 것이라는 전망도 이 같은 관측에서 비롯되고 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밀로셰비치 체포작전 이모저모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 체포작전은 만 하루가 넘게 계속된 일촉즉발의 무장대치 끝에 1일 새벽 결국 밀로셰비치의 '투항' 으로 막을 내렸다.
이날 밀로셰비치를 태운 지프와 리무진 등 5대의 차량이 자택을 빠져나와 베오그라드 중앙교도소로 들어가는 장면이 현지TV에 방영된 직후 정부 대변인은 "밀로셰비치가 법절차에 따르기로 하고 저항없이 체포에 응했다" 고 밝혀 그의 백기 항복을 공식 확인했다. 체포 직전 밀로셰비치의 딸(32)이 쏜 것으로 추정되는 4~5발의 총성이 들렸으나 큰 충돌은 없었다.
긴박했던 순간은 31일 새벽 단행된 체포작전이었다. 사복에 복면을 착용한 60여명의 특수경찰이 호화주택촌인 데딘제 지구의 밀로셰비치 자택에 조명수류탄을 던지면서 진입하자 중기관총, 수류탄, 총류탄 발사기 등 자동화기로 중무장한 20여명의 밀로셰비치 경호원들이 응사,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사진기자 등 2명이 부상했다.
수도와 전기를 차단한 경찰은 체포를 막는 시위대의 저지를 뚫고 대형 화물차와 지프로 밀로셰비치 자택 뒷문을 들이받아 진입로를 만든 뒤 내부 진입을 시도했으나 경호원들이 완강히 저항하자 유혈사태를 우려, 퇴각했다.
31일 저녁 인원을 증강한 경찰은 집 주변의 추종자들과 반대파, 취재기자 등을 50㎙ 이상 후방으로 밀어내 2차 무력진입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1일 투항 직전 자택 내부에서 밀로셰비치와 정부 대표단간 협상이 이뤄졌으나, 밀로셰비치가 현 정권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하수인" 이라며 정부 요구를 거부, 한때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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