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아래 최대 거물급 '도망자'인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돌연 귀국했다. 이 전 장관은 문민 정부의 가장 큰 이권 사업인 PCS(개인휴대통신) 사업자 선정 비리의혹의 핵심인물로, 정권 교체 직전 미국으로 건너가 검찰 수사를 피했다.강제송환 시도마저 비껴 가는 듯하던 그가 자진 귀국한 경위가 우선 궁금하다. 또 그가 의혹을 풀 열쇠를 쥔 것으로 지목했던 검찰이 비리의 진상을 어디까지 파헤칠지도 주목된다.
우리는 먼저 귀국 동기나 배경을 떠나, 수조원 대 이권사업에 얽힌 비리를 낱낱이 밝혀야 할 당위를 강조하고자 한다.
업계의 막대한 로비 자금이 정ㆍ관계 실세를 통해 정권에 흘러 들어간 의혹이 컸던 만큼, 지금이라도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마땅하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미 당선자 시절 감사원 특감을 요청했고, 정권 출범직후 검찰이 김영삼 정부의 총체적 실정(失政) 규명차원에서 요란한 수사에 나섰던 것을 상기하면 한층 그렇다.
96년 이뤄진 PCS 사업자 선정 의혹의 중심은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와 김기섭 전 안기부 차장, 그리고 이석채씨로 이어진 커넥션이다.
특히 이씨는 장관이 되자 사업자 선정 방식을 변경해 사업권 향방을 바꾸는 정치적 결정에 '총대'를 멨고, 해외 도피로 의혹을 굳혀 주었다.
검찰은 이씨가 없는 상태에서 강도 높은 수사로 업체에서 뇌물을 받은 정통부 차관 등을 구속했다. 그러나 정작 이씨는 업체에서 3,000만원을 받은 혐의만으로 기소중지 하고, 김기섭씨는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모친 병환이 재촉했다는 이씨의 전격 귀국은 오랫동안 막혔던 수사의 물꼬를 튼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3년 반을 버티던 이씨의 귀국이 사정 당국과의 교감에 따른 것이라는 관측이 나도는 점이다.
정계개편을 추진하는 여권이 이씨와 김현철씨가 얽힌 커넥션 수사를 김영삼 전 대통령측을 압박, 회유하는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 수사도 이미 드러난 혐의를 확인하는 선에 그칠 것으로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정부가 이런 수순을 구상한다면, 지난 정부의 실정과 비리 청산을 외쳤던 정권의 도덕성을 스스로 허무는 것이다.
명분 없는 무모한 정치적 선택으로 민심을 잃는 어리석음을 되풀이 할 것으론 보지 않는다. 이런 기대가 어긋나지 않으려면, 검찰이 엄정한 수사로 본연의 임무를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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