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30일 미국에서 귀국한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연행, 조사에 들어감으로써 검찰의 개인휴대통신(PCS)사업자 선정 비리 수사가 2년 9개월만에 재개돼 급류를 탈 전망이다.검찰은 1998년 6월 정홍식 전 정통부 차관과 PCS사업자 선정 심사위원이던 박한규 교수 등 4명을 구속했으나,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된 이 전 장관이 수사착수 전인 97년 7월 미국으로 도피하는 바람에 수사를 중단했다.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의 초점은 우선 LG텔레콤이 사업자로 선정된 뒤 받은 3,000만원의 대가성 여부에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도 "일단 돈 받은 경위와 심사방식을 바꾼 것이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를 심도있게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검찰 수사가 기존에 확인된 혐의를 넘어 PCS사업자 선정과정에 개입, 이 전 장관에게 사업자 선정 심사 방식을 바꾸도록 지시한 '몸통' 규명까지 확대될 것인지 여부.
검찰은 당시 PCS사업자 선정 비리 의혹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와 김기섭 전안기부 운영차장, 이 전 장관이 얽힌 커넥션으로 파악하고 수사를 진행했었다. 김 전 운영차장도 당시 한솔PCS에서 7,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95년 7월부터 시작된 PCS사업은 같은해 12월 이씨가 정통부 장관으로 취임, 평가 방식이 바뀐 뒤, 예상과 달리 삼성과 현대 연합 컨소시엄이 탈락하고 LG텔레콤과 한솔PCS 한국통신프리텔이 선정되면서 문민정부 핵심인사에 대한 로비 의혹이 제기됐었다.
검찰은 수사 당시 정통부 관계자들에게서 "심사 방식 변경 등은 모두 이 전 장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는 진술을 확보했고, 이 전 장관이 현철씨의 경복고 선배로 현철사단의 핵심인맥으로 분류됐던 점에 주목해 왔다.
그러나 현철씨와 김 전 대통령에게까지 검찰 수사의 불똥이 옮겨 붙을지는 미지수다. 이 전 장관이 입을 열지 않을 경우 윗선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
이와 관련, 검찰 안팎에서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조사는 미완에 그쳤던 PCS사업자 선정 비리 수사의 끝내기 수순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즉 이 전 장관을 구속하는 선에서 수사가 종결되리라는 것이다.
이 전 장관의 돌연한 귀국이 여권 검찰과 사전 교감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이 대두되고 있는 점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이석채 누구
이석채씨는 5공시절부터 문민정부까지 각종 요직을 맡으며 승승장구하던 대표적 '경제 실세'였다.
경북 성주군 출신으로 서울대 상대를 나온 이씨는 1970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출발해 기획원 예산실장과 농수산부 차관, 재정경제원 차관 등 경제부처 요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문민정부때는 김영삼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경복고 선배로 현철씨 인맥의 핵심으로 불리며 96년 정보통신부 장관, 97년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아 각종 경제 정책을 주도했다.
이씨는 정통부 장관 재직 시절인 96년 PCS사업자 선정과정에서 LG텔레콤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은 혐의와 함께 경제수석 재직 당시의 한보불법대출 연루 의혹까지 터져나오자 97년 10월 미 하와이로 달아나 3년6개월 동안 도피생활을 해왔다.
이상연기자
kubrivk@hk.co.kr
■PCS선정 의혹
정부가 개인휴대통신(PCS) 서비스를 도입키로 한 것은 1995년 7월. 통신시장 개방에 대비, 국내 업체의 경쟁을 강화하고 소비자에게 보다 저렴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였다.
3개 PCS 사업자 중 LG텔레콤과 한솔PCS(현 한국통신엠닷컴)는 공개 경쟁을 통해 96년 6월 사업자로 선정됐고 한국통신의 자회사인 한통프리텔은 자동으로 사업권을 받았다.
정보통신부는 당초 2개 사업자를 선정키로 했다가 업계의 로비에 밀려 3개로 늘렸다.
선정 방법도 심사제→1차 심사를 통과한 업체 중 추첨으로 최종 사업자 선정→심사제 등으로 수 차례 바꿔 빈축을 샀다. 특히 이석채 장관 취임직후인 96년 3월 신청 접수 1개월을 남겨두고 허가 방침을 수정, '도덕성' 평가를 추가해 논란을 일으켰다.
'장비제조업체군'과 '비장비업체군'으로 나눠 각 1곳씩을 선정하는 심사 과정에서도 뒤늦게 청문회 평가를 추가해 문제가 됐다.
LG텔레콤과 삼성ㆍ현대 연합인 에버넷이 각축한 장비제조군의 경우 서류심사에서는 에버넷이 앞섰으나 청문회 평가에서 LG텔레콤이 만점(2.2점)을 받은 반면, 에버넷은 0점 처리된 것이 당락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이석채씨 입국표정
30일 낮12시께 일본 나고야발 JAL983편으로 귀국한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검찰에서 (모든 것을) 자세히 밝히겠다"고 말한 뒤 대기중이던 검찰 수사관에 의해 대검찰청으로 이송됐다.
이 전 장관은 넥타이를 매지 않은 갈색양복 차림으로 35번 탑승교를 통해 모습을 나타낸 후 기다리고 있던 50여명의 취재진에게 담담한 표정으로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며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선정비리 의혹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검정색 가방을 왼쪽 어깨에 메고 온 이 전장관은 귀국소감을 묻는 질문에 "고국에 오니 좋다" "공항이 굉장히 넓고 시원하게 잘 지어졌다"며 공항 전경을 잠시 둘러보기도 했다.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있느냐는 질문에는 "읽은 책들이 들었다"고 짤막하게 답변했다.
한편 체포영장을 소지한 대검 수사관 4명은 이날 오전11시께부터 탑승교 앞에서 기다리다 비행기가 들어오자 이중 2명이 안으로 들어가 이 전 장관과 함께 나온 뒤 승ㆍ하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서울 51더 4366호 누비라 승용차편으로 서둘러 공항을 떠났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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