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한국은행이 예고도 없이 기자실에 17쪽 분량의 보고서를 배포했다.'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한국은행, 어떻게 다른가'라는 제목으로 된 보고서는 "한은이 FRB와 달리, 행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고위관리들이 금리정책에 영향을 주는 발언을 자주함으로써 한은 통화정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음달 6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있는 한은은 경기를 살리자니 콜금리를 내려야 할 것 같고, 물가를 생각하면 유지해야 할 상황이어서 고민하고 있다.
한은의 주장은 일응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한은은 통화정책만 놓고 볼 때 전철환(全哲煥) 총재가 빈번히 사용하는 표현과 달리 '선제적(先制的)'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는데 귀를 기울여야 한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서 30%를 넘어섰던 콜금리를 대폭 내려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에 한은은 수동적으로 대처했다.
99년 6월 이후 미국 FRB가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6차례나 금리를 인상할 동안 한은은 겨우 2차례 밖에 올리지 않아 오늘날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은은 외환시장과 국내 금융시장 불안 등 때문에 과감한 금리 조정이 어려웠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서 "한은이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콜금리를 운용, 이제 금리를 내리든 올리든 시장에는 별 영향이 없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것은 분명히 한은의 책임이다.
한은 간부들은 금융시장에 영향을 줄 제도적 수단이 없다는 비유로 '탄환은 있는데 대포가 없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러나 전선의 선두에서 위험을 무릎 쓰고 싸우지 않는 부대에게 새로운 대포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박정규 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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