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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 양평 고추장담그기 체험학습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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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 양평 고추장담그기 체험학습 현장

입력
2001.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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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유난히 따스했던 23일 경기 양평군 용문면 덕촌리의 '광이원 농장'. 용문산 자락에 자그맣게 둥지를 튼 이 유기농 채소농장에 도시의 손님들이 무리 지어 찾아왔다. 예전 같으면 볕이 좋은 춘삼월, 그것도 반드시 상서로운 길일(吉日)만을 골라 했다는 농가의 연례행사, '고추장 담그기'가 열리는 날이다.인터넷 포털 코리아닷컴(www.Korea.com)과 유기농산물 전문 쇼핑몰 62농닷컴(www.62nong.com)이 공동주최한 이날 체험행사에 참여한 인원은 약 40여 명. 장 담그는 것은 생전 구경조차 못해봤다는 '왕초보'들이 대부분이다.

"고추장은 정성이 맛입니다. 메주 익는 것처럼 여유있고 느긋하게,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해야 합니다."광이원 김광자(42ㆍ여)원장의 강의가 시작된다. "잘 담근 고추장은 자식 기르듯 정성을 다해 돌봐야 합니다. 곰팡이가 안 피도록 하루에도 여러 번씩 옹기 뚜껑을 열어 볕을 쐬어주고 숨을 쉬도록 해줘야 합니다."

재래식 고추장 만드는 과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에 이어 곱게 빻은 찹쌀가루나 우리 콩 메주가루, 태양초 고춧가루 등 기본 재료에 대한 소개가 끝나자 기다리던 실습 시간.

참석자들은 저마다 4~5명씩 조를 이뤄 고추장 담그기에 들어간다. 먼저 찹쌀가루를 익반죽한 뒤 손바닥만한 크기로 둥글게 빚고, 뜨거운 물에 삶고, 다시 큼직한 양푼에 넣어 나무주걱으로 풀고.. 여럿이 힘을 합치니 진행이 무척 빠르다.

"원장님, 찹쌀 반죽은 얼마나 더 저어주나요?"

"'따닥' '따닥' 하고 꽈리소리가 납니까? 그러면 찹쌀 반죽이 다 풀어졌다는 뜻이에요. 반죽이 제대로 풀려야 나중에 고추장에 윤기가 흐릅니다."

"어, 정말 꽈리소리가 나네. 신기하기도 해라."

여럿이서 쉬지 않고 반죽을 젓다 보니 여기저기서 꽈리 터지는 소리가 잇따라 터져 나온다. 한 40대 주부는 "이렇게 힘든 일을 옛날 여인들은 어떻게 혼자 했을까?"하며 연실 이마의 땀을 닦는다. 찹쌀반죽이 다 풀린 뒤에는 밤새 쑤어놓은 엿길금(엿기름)물과 메주가루, 굵은소금과 고춧가루를 차례로 섞어가며 다시 한동안 반죽을 저어주는 것이 순서. 마침내 태양초 고춧가루가 반죽에 더해지니 코끝을 자극하는 맵싸한 향내가 곳곳에 진동한다. 비로소 선홍빛 고추장의 빛깔이 눈 앞에 펼쳐진다.

"어머나, 원장님 이것 좀 보세요. 색깔이 너무 예뻐요."

"아직 농도가 덜 맞춰졌네요. 나무주걱에 붙은 고추장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되직하게 저어주세요. 붉은 색이 덜 난다고 생각되면 고춧가루를 조금 더 넣어주면 됩니다.""이쪽엔 소금을 듬뿍 더 넣어야겠네요. 숙성 도중 상하지 않게 하려면 다소 짜다 싶게 간을 맞춰야 합니다."

고추장이 완성되자 참석자들은 저마다 성질 좋은 옹기독을 골라 와 자기가 만든 고추장을 담고 항아리에 이름표를 붙인다. 이제부터 100일쯤은 더 기다려야 내가 담근 '무공해 청정 고추장'을 맛볼 수 있다.

실습 도중 보다 자세한 조언을 듣기 위해 친정어머니까지 모시고 나온 주부 장정임(41ㆍ서울 송파구 방이동)씨의 소감. "슈퍼에 가면 널린 게 고추장이고 된장인데 왜 사서 고생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식구들이 매일 먹는 장만큼은 조금 특별해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론 시간이 걸리고 번거롭더라도 내 손으로 직접 담가 볼 생각입니다."결혼 2년차의 새내기 주부인 홍연순(29ㆍ인천 연수구 청학동)씨는 "잔뜩 긴장하고 왔는데 장 담그기가 생각보다 너무 쉽고 재미있다"며 "이제부턴 시골의 친정에서 고춧가루며 메주가루를 많이 갖다 써야 할 것 같다"며 활짝 웃는다.

고추장 담그기 체험학습이 열린 농장 정원 옆 장독대에는 음력 정월에 담근 된장이 구수한 메주 냄새를 풍기며 곱게 익어가고 있다. 항아리에서 된장과 간장을 분리하게 되는 올 초여름이면 고추장독에서도 이날 담근 고추장이 툭툭 거품을 일으키며 식탁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양평=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고추장 맛내기 노하우

좋은 물과 재료, 충분한 햇볕은 재래식 고추장 맛내기의 기본 요소. 물은 가능하면 수돗물 대신 생수를 사용하고 메주나 고춧가루, 찹쌀 등은 국산을 써야 제 맛이 난다. 고추장을 담글 때 엿길금 대신 물엿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엿을 넣은 고추장은 당장 달콤하긴 하지만 찌개에 넣으면 맛이 쉽게 텁텁해진다.

고추장을 담는 항아리는 될 수 있으면 입이 넓은 것으로 준비한다. 그래야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 매일 아침에 항아리의 뚜껑을 열었다가 해가 지면 닫아 햇빛을 충분히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항아리에는 공기가 통할 수 있을 정도로 촘촘한 흰색 보자기를 덮어준다.

고추장의 맛을 내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메주가루. 잘 숙성시킨 재래식 메주가루를 사용하면 고추장의 뒷맛이 한결 구수해진다. 좋은 재래메주는 영양성분의 분해효소가 골고루 분포돼 있어야 한다. 겉이 말라 있고 색깔이 노르스름하며 눌러 보았을 때 약간 말랑말랑한 것, 반으로 쪼갰을 때 안이 검붉게 보이고 겉에 핀 곰팡이는 흰색 또는 노란색을 띠는 것이 좋다. 표면이 지나치게 검고 축축한 것은 피한다. 파랗거나 검은 색을 띠는 것은 잡균이 많아 장을 담그면 곰팡이 냄새가 심하다.

발효기능을 가진 황국균을 인공적으로 넣은 개량메주를 사용해도 무방하다. 개량메주는 알이 작고 껍질이 얇으며 색은 엷은 녹두색을 띤 것을 고른다. 흰 색이나 검은 색이 강한 것은 온도조절이 잘 되지 않은 메주다.

양평=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김광자 원장의 고추장 담그기 비법

□ 재료_ 메주가루 4되, 찹쌀가루 3되, 고춧가루 4되, 엿길금 3큰컵, 굵은 소금 4되

□ 만들기

1.찹쌀 가루를 익반죽(팔팔 끓는 물을 넣고 반죽)하여 둥글게 빚은 뒤 구멍을 뚫고, 끓는 물에 삶아 건져낸다. (찹쌀떡을 건진 물은 버리지 말고 그대로 보관해 둔다.)

2.삶아 건진 찹쌀떡을 양푼에 담아 뜨거운 상태에서 꽈리가 일도록 나무주걱으로 쳐서 풀어준다. 너무 되다고 생각되면 보관해 두었던 떡 삶은 물을 조금 넣어 '된 풀' 정도로 만든다.

3.엿길금은 고추장 담기 전날 밤에 엿기름(보리에 물을 부어 싹을 내어서 말린 것) 가루 한 컵 당 물 3컵을 타서 놔 둔다.(윗물을 따로 이용하면 더욱 좋다)

4.엿길금 물을 붉은 빛이 날 때까지 2~3시간 정도 달인다.

5.삶아 건진 떡을 메주가루와 엿길금물을 붓고 잘 저어 골고루 섞이도록 한 다음 고춧가루, 소금을 넣고 충분히 저어 준다.

6.준비한 항아리에 잘 버무려진 고추장을 넣고 햇볕에 놓아 표면이 어느 정도 마르면 그 위에 소금을 얇게 얹어 준다. (고추장이 마르기 전 소금을 얹을 경우 소금이 녹아내리므로 반드시 고추장이 마른 다음에 한다.)

양평=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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