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말 '클린 기업(건전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채권단이 2조9,000억원의 천문학적 자금을 지원키로 확정함에 따라 지난해 5월부터 계속돼온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는 일단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정부와 채권단은 이번 출자전환 조치로 1,300%를 넘던 부채비율이 260% 안팎으로 떨어져 만성적인 적자 구조에서 탈피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건설업계 불황 등 외부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언제 다시 유동성 문제가 불거질지 장담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 전폭 지원 배경
채권단은 ▦부도 처리후 청산 ▦법정관리 ▦감자 후 출자전환 ▦ 출자전환 및 신규 출자 등 4가지 방안을 놓고 저울질한 끝에 출자전환 및 신규출자를 해법으로 선택했다.
청산은 직접 손실만 채권금융기관 손실 5조9,000억원 등 총 13조6,000억원에 달하는데다 국내건설기반 붕괴, 실업자 양산 등 간접 손실도 만만찮아 일찌감치 고려대상에서 제외됐다.
한때 유력하게 검토됐던 법정관리 역시 대손충당금 추가적립액 1조655억원 등 최대 28조2,000억원의 추가손실이 예상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게다가 건설업종 특성상 회생 가능성이 낮은데다 현대 계열 전체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 탓에 정부측이 강력히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해외 클레임, 계열사 불똥, 브랜드 가치 하락 등 여러가지 면에서 법정관리는 피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신규 출자 없이 출자전환만 하는 방안 역시 재무구조 개선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에 배제됐다.
채권단이 추산한 신규 자금 소요액은 서산농장 매각차질(2,500억원), 6월까지 만기 도래 회사채 상환(4,340억원), 해외차입금 상환요청 예상액(5,200억원) 등 총 1조5,640억원.
채권단은 이에 따라 기존 대출금 1조4,000억원을 출자전환함과 동시에 1조5,000억원의 신규자금을 지원해 부족자금을 말끔히 메우는 방안을 선택했다.
회생 가능한가 현대건설의 경영컨설팅을 맡고 있는 ADL사는 올해 현금이 1조3,500억~1조6,500억원 유입되고 부채비율이 250~300% 수준이 되면 정상적인 영업활동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이번 출자전환과 신규출자로 1조5,0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되고 부채비율이 260% 안팎으로 떨어지는 만큼 안정권에 접어든다는 것이 채권단측 설명이다.
채권단은 또 올해 영업이익이 4,650억원에 달하는 것을 비롯해 2002년 5,679억원, 2003년 6,808억원 등으로 확대되는 반면, 금융비용(이자)은 올해 3,061억원에서 2002년 2,970억원, 2003년 2,909억원 등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경림 외환은행장은 "조직 슬림화, 인력감축 등 경영개선계획을 성실히 이행하고 계획대로 출자전환 및 경영진 전면 개편이 이뤄진다면 새로운 전문경영인을 중심으로 경영정상화가 조기에 가시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형적인 수치에 현혹돼 장밋빛 전망으로만 일관할 수 없다. 당장 영화회계법인의 자산ㆍ부채 실사 결과 추가 부실이 드러날 경우 2조9,000억원의 지원액으로도 부족할 수 있다.
또 건설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는 등 외부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거나 해외 채권자들이 채권 회수 등 돌발 행동에 나설 경우 채권단이 작성한 낙관적인 연도별 손익계산서는 무용지물로 전락한다.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이번 지원으로 채권단은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제는 어떤 상황에도 채권단이 손을 뗄 수 없어 최악의 경우 국가적인 부담은 지금보다 몇배 이상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현대건설 반응
현대건설은 채권단이 1조4,000억원을 출자전환하고 1조5,000억원의 유동성을 지원키로 결정함에 따라 극적으로 회생의 기반을 마련했다며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반 직원들은 유동성위기 등에 대한 공포감에서 벗어나 마음 놓고 업무에 매진할 수 있게 회사 조기정상화에도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반면 부장급 이상 고위직 임직원 일부는 "출자전환이 이루어지면 혹독한 구조조정이 있게 되고 고위 임원부터 퇴직을 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불안해 하고 있다.
현대건설측은 "정부와 채권단이 현대건설을 회생시키기로 한 이상 자금을 풍부하게 지원 받을 수 있어 영업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며 "회생으로 가닥을 잡은 만큼 구조조정도 강화하고 영업능력도 더욱 키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출자전환이 마무리 되기까지는 일정기간이 필요하겠지만 유동성 지원과 출자전환 방침으로 현대건설의 신인도가 크게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며 "덕분에 국내외 공사수주, 아파트 분양에서 발주처나 일반인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 "고 덧붙였다.
현대측은 "채권단이 당초 지원키로 했던 4,000억원 중 3,000억원을 3~4월중에 지원할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자금이 들어오면 유동성에 문제가 없으며 영화회계법인의 실사가 마무리돼 5월중에 출자전환이 완료되면 현대건설의 이름이 유동성문제로 다시 거론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재우기자
josus62@hk.co.kr
■경영진 어떻게되나
정부가 현대건설 최대주주인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과 김윤규 사장 등 현 경영진을 몽땅 퇴진시키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현대건설의 향후 진행방향과 후임 경영진이 누가 될까 등에 관심이 쏠리고있다.
이미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이 출자전환이후 현대건설 경영진 문제에 대해 "현대건설 대주주와 경영진은 모두 퇴진시키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정 회장과 김 사장은 조만간 모두 현대건설에서 손을 뗄 수 밖에 없게 됐다.
청와대 고위당국자도 "거액의 출자전환이 이루어지는 만큼 대주주에 대해서는 완전감자 조치가 이루어 지고 대주주인 정 회장과 '가신 경영인'은 경영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확인했다.
물론 후임 경영진은 출자전함과 함께 최대주주가 될 채권단의 몫으로 건설 전문 경영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해외신인도를 높이기위해 외국인 전문경영인을 영입할 수 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있다. 반면 정부는 정몽헌 회장 등 현경영진에 대해서는 부실경영의 책임을 물어 강도높은 문책을 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 경영진 후보로 지금까지 거론된 인물들은 이내흔 전 현대건설사장을 비롯, 전임 경영진 3명이 주류다.
고 정주영 현대명예회장의 비서출신인 이 전 사장은 현대건설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위기에 빠진 현대건설을 구할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으나 현대건설 유동성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내부 비판도 있다.
재무통인 심현영 전 현대건설 사장도 후보물망에 올라있으나 고령인데다 본인이 고사하고있다는 후문이다. 현대건설에서 해외건설사업을 맡았던 장동국 전 현대전자 부사장도 현대주변에서는 적임자로 거론된다.
한편 현대건설이 주주총회에서 김윤규 사장을 유임시킨데 이어 최대주주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현대건설 이사회 회장직 복귀를 보류, 현 경영진은 출자전환 때까지 '과도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현대건설은 출자전환 이전까지는 김 사장을 중심으로 마지막 수습을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김 사장도 이날 "조만간 임시 주총이 개최돼 주주를 다시 구성할 예정"이라며 "그 이전이라도 여건에 따라 경영에서 물러날 수 있다"고 말해 퇴임의지를 확실히 했다.
물론 김재수 그룹구조조정위원장도 함께 퇴진할 것으로 점쳐진다.
조재우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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