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 국가 상징 조형물이라고 떠들던 '천년의 문'건립이 취소됐다. 정부가 결단을 내린 이유는 여러 가지다.당초 300억원에서 550억원으로 늘어난 비용 마련이 어렵고, 지금 착공해도 내년 5월 월드컵 때 겉 모습조차 선 보일 수 없게 됐다. 또 세계 초유의 지름 200미터 원형 구조물의 안전성이 걱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제 입으로 밝히기 겸연쩍었을 진짜 이유는, 쓸모없이 허황한 구조물에 왜 헛되이 돈을 쓰느냐는 반대여론이 많은 때문이다.
■애당초 잘못 생각했다고 시인하는 용기가 없는 것은 아쉽다. 그러나 여러 형편을 헤아려 더 늦기 전에 잘못을 바로 잡은 것은 드물게 가상한 일이다.
이미 쓴 돈이 아깝지만, 더 큰 낭비를 막은 것은 다행이다. '국민과 약속을 어겼다'는 따위, 근거 없고 염치 없는 비판을 하는 것은 가소롭다.
지각 있는 국민가운데 헛돈 쓰는 걸 기꺼워할 이는 없다. 정작 필요한 것은 왜 이런 허황한 발상을 진작 뿌리치지 못했는가를 정부와 사회가 함께 반성하는 것이다.
■이미 알려졌지만, 가장 야심적인 새 천년 기념물인 영국 그리니치의 밀레니엄 돔은 가장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무려 12억달러를 들인 화려한 돔은 산업혁명과 세계화를 선도한 옛 대영제국의 자존심과, 새 천년 새로운 영광을 향한 의지를 상징했다. 그러나 국민의 호응 부족으로 엄청난 적자를 안은 애물단지로 변한 채 곧 해체될 운명이다.
영국 언론은 이 밀레니엄 돔을 공허한 과장과 웅대함에 물색없이 열광한 어리석음의 기념탑으로 규정했다.
■'천년의 문'구상이 선례로 든 에펠탑 등 역사상 숱한 거대 기념물은 국가적 자긍심과 정치적 선전, 상업적 야심 등을 함께 담고 있다.
또 이런 의도는 고대 이래 20세기 중반까지 체제를 가림 없이 대체로 성공했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미디어 스펙터클에 익숙한 대중은 웅대한 장관에 쉽게 식상하고, 낡은 정치적 메시지에 권태를 느낀다.
'상징의 시대'는 끝난 것이다. 이를 무시한 밀레니엄 돔과 '천년의 문'발상이 실패한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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