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비뇽 박물관에는 흥미롭게 생긴 청동상이 있다. '명상록'을 저술한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재위 211~217)를 표현한 '카라칼라 입상'이다.그런데 문제는 이 청동상이 위엄있는 황제의 모습이 아닌, 우스꽝스럽게 생긴 난쟁이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한 손으로는 과자 바구니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과자를 나눠주는 이 기괴하게 생긴 청동상을 통해 조각가는 과연 무엇을 말하려 한 것일까.
'풍자예술의 역사'(정진국 옮김)는 서양 고대와 중세 풍자예술의 진면목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지금껏 봐왔던 우아하고 고상한 예술 작품에 대해서가 아니라 추악하고 엽기적이고 괴상한 작품에 대한 꼼꼼한 관찰이자 탁월한 분석이다.
프랑스의 풍자작가 샹플뢰리(1821~1869)가 1865년에 쓴 이 책은 고대와 중세의 연극ㆍ문학ㆍ미술 등을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예전부터 필독서로 여겨져 왔다.
카라칼라 입상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다. "옹색한 키와 짧고 흰 다리는 동생을 죽이고 알렉산드리아 청소년들을 학살한 카라칼라에 대한 적나라한 야유이다.
과자는 그가 거둬들인 부당한 세금을 암시한다. 작가는 백성의 희생을 대가로 병사들에게 관용을 베풀었던 황제를 무참히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고대뿐만 아니다. 중세 유럽의 엄숙한 대성당 벽이나 기둥에 조각된 수많은 기괴한 조각은 무엇을 뜻하는가.
가마솥에 빠진 마귀, 여성의 국부를 핥고 있는 악마, 파이프 오르간을 두드리는 짐승.. 저자는 이것들을 '석공이 당시의 민중적 신앙을 좇아 원죄와 그 단죄에 대한 표상, 성직자에 대한 야유를 거친 모습으로 돌 위에 새긴 것'으로 풀이한다.
저자는 이렇게 고대의 항아리나 청동상에 새겨진 낙서와 반신반수 그림, 중세의 종교 건축에 붙어있는 조각과 세밀화 등을 통해 풍자 예술의 존재의의를 밝힌다.
다름아닌 그로테스크한 풍자를 통해 당대 사회를 비꼬는 역할이다. "풍자 예술의 부활을 통해 현대 예술이 잃어버린 교훈적 구경거리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속내로 파악된다.
김관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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